[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일 대국민 기자회견을 통해 연말정산 세금폭탄 논란의 진화에 나섰지만 한 번 불붙은 민심이 쉽게 꺼지지 않을 전망이다. 단순히 세금을 토해내거나 덜 받는 선을 넘어 정부정책과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 논란은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2013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정부의 재정과 세제정책기조 변화에 주요 현안에 대한 정부대응, 정부과 국민의 시각 차 등의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나타난 결과로 풀이된다.
◆문제 발단은 '증세 없는 복지'= '13월의 세금폭탄'으로 표출된 민심이반의 출발점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증세 없는 복지'다. 공약가계부는 박근혜정부 5년간 140대 국정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돈과 마련할 돈을 대차대조표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정부는 소득세나 법인세를 건드리지 않고 국가재정을 깐깐하게 관리하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줄이면서 비과세·감면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재원을 조달하겠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집권 3년 차를 맞은 현재 정부의 정책기조는 바뀌었다. 긴축재정은 확장재정으로, SOC 투자는 축소에서 확대로, 비과세·감면은 축소에서 부분유지로 조정됐다. 여기에 대내외 여건악화까지 겹치면서 재정적자와 세수부족의 만성화·고착화가 굳어지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는 복지재정부담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자체와 지방교육청의 반발을 불러왔고 '떼를 쓰면 통한다'는 잘못된 관행을 만들어놨다. 2013년 지자체들은 여야가 합의한 영유아 보육료 국고보조율 인상안에 반발했고 결국 정부는 정부안(10%포인트 인상)에 추가로 5%포인트를 인상해줬다. 지난해에는 지방교육감들이 누리과정 예산의 국고지원을 요구하자 여야와 정부는 결국 5064억원을 목적예비비로 편성해 지원해주기로 했다.
◆흔들리는 조세정책= 박근혜정부의 조세정책은 낮은 세율과 넓은 세원, 공평과세지만 이에 대해 국민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13년 현오석 당시 부총리 시절 세 부담이 늘어나는 중산층 기준을 연소득 3450만원으로 정하고 소득세를 연간 16만원씩 더 걷겠다고 발표했다.
연소득 3450만원 근로자가 당시 434만명, 전체근로자의 28%이니 정부 생각에는 중산층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조원동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그만하면 감내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거위가 안 아프게 거위털 뽑으려 한 게 이번 조치"라고 말했다. 결국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고 박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지시를 통해 중산층 기준선을 연봉 50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주민세와 자동차세를 대폭 인상했다가 증세논란을 빚었지만 "증세가 아니다"고 했고, 최근 담뱃값 인상에서도 "세수목적이 아니라 국민건강을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이번 연말정산의 논란에 대해서도 "고소득자의 세부담을 높이고 저소득자의 세부담은 줄이는 것"이라며 "고소득층에서 걷은 세금을 저소득층에 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 세부담에 조세형평 논리 禍키워= 납세자들은 "매달 소득세를 비롯해 각종 세금을 원천징수하면서 연말정산을 통해서도 고소득층의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에 지원한다는 논리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정부는 논란이 커지자 사후에 보완책을 검토하겠다며 다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국민은 나무를 갖고 얘기하는데 정부는 숲을 보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면서 "국민 개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세금을 국가 전체에서 봐달라고 하면 누가 이해하겠는가"라고 일침했다.
넓은 세원과 공평과세도 위축되고 있다. 넓은 세원의 대표적 세제인 종교인과세는 종교인의 반발과 정치권의 미지근한 대응으로 지난해 또다시 무산됐다. 자영업자에 대한 소득파악률도 제자리다. 근로소득자는 세원이 100% 노출되고 소득파악률도 100%에 근접한 반면에 자영업자는 60% 수준에 불과하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해 낸 '자영업자의 소득 탈루율 및 탈세 규모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소득세 탈루율(추정소득으로 산출한 내야 할 세금에서 내지 않은 세금의 비율)은 2009년까지 30%대를 기록했다가 2012년 기준 29.7%로 분석됐다. 자영업자 가구주 1인당 208만원의 종합소득세를 탈루한 셈이다.
◆증세 논의 불가피= 증세 없는 복지가 가져온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는 증세를 논의하거나 복지를 줄여야 한다. 정부는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은 경기 회복세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복지재정에 대해서는 부정수급방지대책 등 누수를 막는 쪽에서 해답을 찾고 있다.
오문성 한양여대 교수는 "국민을 설득해 합의를 구하는 문제는 쉬운 문제가 아니다"면서도 "정부가 현재 상황을 솔직히 설명하고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성실하게 설득하려는 자세를 보이는 것 그 자체가 증세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 그리고 증세를 하기로 했다면 어느 세목으로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조세저항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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