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서 홈스쿨링' 악동뮤지션 부모가 들려주는 창의성의 비밀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 "이게 바로 진정한 듀엣!"
2012년 '악동 뮤지션'이 SBS의 오디션 프로그램 K팝스타 시즌2에 등장했을 때 박진영 등을 비롯한 심사위원들이 내린 찬사다. 코드도 모른 채 기타를 치고 곡을 쓰는 열여섯 살 오빠, 꾸밈없고 매력적인 음색으로 노래하는 열세 살 여동생이 정식 음악교육은커녕 학교도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팬들은 도대체 그들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그들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들일지 궁금해했다. 이들 남매의 아버지 이성근씨와 어머니 주세희씨가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한성백제홀에서 '오늘 행복해야 내일 더 행복한 아이가 된다'라는 주제로 '악뮤'를 키우면서 느끼고 깨달았던 점을 진솔하게 들려줬다.
◆너희는 '걸작품'= 이찬혁(18)과 이수현(15)으로 구성된 악동뮤지션은 K팝스타 우승 이후 국내 최대 연예기획사인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오디션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엉뚱하고 발랄한 노래, '다리 꼬지 마'부터 '콩떡빙수' 'Crescendo(크레셴도)' '라면인 건가' 등 그들만의 재치와 독특한 감성이 담긴 곡들은 하나같이 신선하고 사랑스러웠다. 악뮤에게는, 화려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또래의 아이돌그룹에서 비치는 인기에 대한 조바심, 무대에서의 긴장감이 없다. 수줍고 털털한 그들은 '마냥 즐기고 있다'는 편안함으로 팬들을 끌어들인다. 이 편안함에는, 어릴 적부터 그들을 '걸작품'이라 칭찬해온 부모의 전폭적 사랑이 깔려 있다.
주씨는 딸 수현이 유치원에 갈 무렵 "엄마, 왜 나는 눈이 작아?"라고 말했던 순간을 기억한다. 보다 '출중한' 외모를 가지지 못해 고민하던 수현에게 주씨는 "너는 걸작품이야"라고 말해줬다. 너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해서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다고 말해주고는, 오히려 자신이 부지불식간에 이 걸작품에 흠집을 내는 건 아닐까 자주 돌아봤다. 주씨는 "어린아이들은 부모의 말을 스펀지처럼 흡수한다"며 "아이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는 것, 그것은 '본래의' 걸작품에 흠집을 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미남미녀로 둘러싸인 연예계에 발을 들이고 나서도 악뮤는 그래서 '꿋꿋'했다. 외모와 관련한 악플에도 이들은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옆에서 안타까워하는 부모님에게 오히려 '10년 후에는 우리 얼굴이 대세가 될 것'이라며 웃는단다. 이씨는 "자신들의 '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쉽게 주눅들지 않는 것 같다"며 "가정에서 탄탄해진 정서적 안정감은 나중에 힘든 일이 있어도 그 토대 위에서 일어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약점, 그리고 사과= 악뮤가 한국이 아닌 몽골에서 학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링'으로 자랐다는 사실은 꽤 알려져 있다. 이씨는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초원, 드높은 하늘을 누리며 자랐겠다고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며 "7개월 정도가 한국의 겨울에 해당하는 데다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자연을 누리는 일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홈스쿨링도 가정형편이 좋지 않아 학교에 보내기 힘들어 시작하게 된 것이지 특별한 철학이 있어서는 아니었다고 한다.
찬혁군은 혹독한 사춘기를 겪었다. 하루아침에 '외계인'이 된 것 같았다고 주씨는 회상했다. 말이 없어지고, 어떤 대화를 시도하려 해도 소통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특히 심각했다고 한다. 욱하는 기질이 있는 이씨와 찬혁 사이에 벽이 쌓여갔다. "다시는 관계가 회복될 수 없을 것 같다고 느꼈을 정도"였다고 이씨는 말했다. 두 남자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주씨와 수현이 매일 설득을 거듭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씨가 문득 '어른들은 자신의 잘못을 얘기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깨달음 하나가 도저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성벽을 깨뜨렸다. 이씨가 찬혁에게 "내가 욱하는 기질이 있는 것을 안다. 고치려고 하지만 한 번에 고쳐지지 않는다"며 "계속 노력하겠지만 앞으로 또 그럴 때가 있다면 몇번만 더 용서해주겠니?"라고 말했다. 이 한마디에 그 터널 같던 시간에 빛이 들어왔다고 한다. 부모의 약점을 보여주고 그것을 인정하는 일, 그것은 자녀에게 더 큰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이들은 말했다. 이씨는 또 "사춘기에는 부모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아니다"며 "그때는 '친구'가 모든 것에 강력한 동기를 불어넣어 주는 절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다소 서운하더라도 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창의력은 '딴짓'에서= 몽골에서 학교에 가지 않아 시간이 많았던 남매는 끊임없이 '딴짓'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두 아이에게 기꺼이 '친구'가 돼 주기로 했다. 주씨는 "진짜 친구만큼 채워줄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원할 때 늘 옆에서 함께 놀아줬다"며 "아이들은 부모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같이 놀아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놀아주다 보면 부모도 계속 이런저런 놀이법을 궁리하며 아이디어를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아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부모의 역할이라고 했다. 아이들은 놀다가 '딴짓'을 하다 보면, 지루해서 또 딴짓을 하고, 그것도 지루해지면 다른 딴짓을 한다. 그 과정에서 찬혁과 수현은 '음악'을 찾았다.
"홈스쿨링을 할 때 스스로 시간표를 짜보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온통 '노는 것'으로 짜더라고요. 그렇게 놀다 지치니 '공부'도 좀 넣고요.(웃음) 둘이 놀다가 자연스럽게 화음을 넣으며 노래를 만들고 있는 걸 보고 놀랐어요. 그리고 그게 바로 K팝스타에서 본 악동뮤지션의 모습입니다."(주세희씨)
"많은 한국의 부모들이 자녀의 미래를 위해 희생하며, 아이들 역시 '내일'을 위해 오늘을 '참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러한 삶의 방식은 시간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아요.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으면 또 그 자녀를 위해 희생하게 되겠죠. 아이들이 '지금' 원하는 일을 하도록 해주는 일, 지금 행복하게 하는 일, 그것이 부모의 역할 같습니다."(이성근씨)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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