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방해죄 요건인 ‘전격성’ 불충족…“근로제공 거부 처벌은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 사상 최장기간 철도파업을 이끌었던 전국철도노조 지도부가 업무방해 혐의와 관련해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13부(부장판사 오성우)는 철도노조 파업을 주도한 혐의(업무방해)로 기소된 김명환 전 철도노조 위원장(49)에 대해 22일 무죄를 선고했다. 박태만 전 수석부위원장(56), 최은철 전 사무처장(41), 엄길용 전 서울지방본부 본부장(48)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명환 전 위원장 등은 지난해 12월9일부터 12월31일까지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에 반대하며 철도노조 사상 최장기간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기소됐다.
철도노조는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을 KTX 민영화 시도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법원은 지난해 철도파업의 목적과 관련해 불법적인 요소가 있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2013년 철도파업의 목적은 한국철도공사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에 관한 것으로 위법”이라면서 “철도파업으로 사회적 혼란 및 국가경제적 손실이 발생했고 국민들에게 심각한 불편이 있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단순한 근로제공 거부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강제노역을 부과하게 되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재판부는 “현재 정당성이 없는 단순한 근로제공거부행위를 형사처벌하는 국가는 실질적으로 우리나라밖에 없어 국제노동기구(ILO) 등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단순한 근로제공의 거부행위를 업무방해죄로 처벌하는 것은 제한적·한정적으로 적용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가 철도노조 파업 지도부에게 무죄를 선고한 핵심 이유는 업무방해죄의 요건인 ‘전격성’을 갖추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1년 3월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져 사업 운영에 막대한 손해가 초래됐을 경우 업무방해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업무방해죄 성립을 위해서는 ‘전후사정과 경위에 비춰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져 사용자의 사업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라는 객관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철도노조 파업의 경우 “직원들의 진술, 언론 보도 내용, 철도노조가 파업 전 필수유지 업무명단을 통보하고 철도공사는 이에 대해 비상수송대책 등을 강구한 점 등을 종합하면 철도사업장의 특성상 대체인력투입에 한계가 있고 국민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필수공익사업장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전격적으로 파업이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파업이 사전에 예고되고 노사 간 논의가 있었으며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상 일련의 절차를 거쳐 사용자(철도공사)에게 충분한 예측가능성과 대비가능성이 있었다면 단순한 근로제공 거부 형태의 파업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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