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백종민 기자] 그야말로 '블랙 튜스데이'였다. 16일(현지시간) 달러 대비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폭락했다. 하루 전 60루블이라는 댐이 무너진 후 70, 80 루블이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러시아중앙은행의 전격적인 금리 인상조치는 진화가 아니라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증시도 12%나 추락했다.
이미 외신들은 러시아가 98년 겪었던 디폴트(지급불능) 사태로 향하고 있다는 진단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연초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서방의 러시아 제재가 시작됐을 때 만해도 러시아와 푸틴은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여름 이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전개되며 러시아와 푸틴에게 치명타로 다가왔다.
유가 하락이다. 이는 러시아 재정의 절반을 차지하는 석유 산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마침 이날 북해산브렌트유가가 60달러 이하로 추락했다. 브렌트유는 6개월 전 115달러에 비해 사실상 반 토막이 났다.
러시아중앙은행은 이날 유가가 배럴당 60달러 수준을 유지할 경우 내년 러시아 경제가 4.5% 축소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심지어 2017년에 5.6%의 성장을 보일 것이라는 자신감도 비쳤지만 외신들은 반신반의하는 모습이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지만 오히려 러시아가 폭탄을 안고 있던 셈이다. 고유가 상황에서 막대한 자금을 비축한 중동국가들과 달리 러시아의 상황은 불안하기만 하다.
러시아는 신뢰도 얻지 못하고 있다. 환율 방어 과정에서 정책 실기가 연이어 불거졌다. 16일의 금리 인상도 그런 예다. 블룸버그통신은 이 결정이 투자자들에게 매도 신호를 준 것이라고 평했다.
러시아중앙은행은 지난 11월에는 환율을 시장 자율에 맞기겠다고 선언했지만 그럼에도 시장 개입을 이어왔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식의 대책에 비해 유가 하락 폭이 깊어지며 루블화 가치는 자유낙하했다.
그러는 사이 외환보유고만 까먹었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연초 4990억달러에 이르던 러시아의 외화 보유고가 현재 4000억달러로 하락한 것으로 추산했다.
FT는 러시아가 향후 자본시장 통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이 나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물가도 심상치 않다. 러시아의 지난 11월 물가상승률은 9.1%였다. 러시아중앙은행의 중기 물가 상승률 목표 4%다. 통화가치 하락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에 따라 내년 초에는 두 자릿수의 물가 상승률이 우려되고 있다. 이는 소비 여력을 감소시켜 경제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민들도 동요하고 있다. 16일 러시아 최대 은행 소베르방크 지점에는 예금과 연금을 찾으려는 고객들이 줄을 이었다. 가치가 더 내리기 전에 루블화를 찾아 달러나 유로로 환전하거나 수입공산품이나 가구, 보석, 명품 등으로 바꿔 놓으려는 목적이다. 이에 이날 달러 환전액이 평소의 3~4배로 치솟았을 정도였다.
18일 부터 가격 인상을 예고한 이케아 가구매장에는 새벽 2시에도 줄을 서는 광경이 목격됐다. 대표적인 내구재인 자동차도 가격 인상 전에 사려는 소비자들이 몰려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시민은 FT와의 회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는 잘 모르지만 루블화가 더 빠질 것 같다"고 말하고 예금을 찾아갔다.
백종민 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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