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작성 지시한 조응천 전 靑공직기강비서관
언론 인터뷰 통해 정윤회 등 주장 반박…'폭로전' 양상으로
정씨-靑 연결고리·3인방 인사개입 정황 등 충격적 내용 담겨
[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정윤회 씨 국정개입'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1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그 같은 의혹이 사실일 가능성이 높으며, 정 씨의 국정개입을 도왔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대통령 측근들이 공직인사에 개입해왔다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검찰 수사를 앞둔 조 전 비서관이 자신의 일방적 주장을 펼친 것이라 치부하더라도, 이번 사안이 청와대 해명처럼 '사실무근'으로 간단히 종료되지 않을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조 전 비서관이 인터뷰에서 공개한 내용 중 상당수는 그간 청와대나 기타 당사자들이 밝힌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자신의 부하직원인 박모 경정을 통해 정씨의 행보를 추적했고, 정씨가 청와대 실세 비서관 3인(이재만 총무ㆍ정호성 제1부속ㆍ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을 포함한 이른바 '십상시(十常侍 )'를 통해 국정에 개입하고 있다는 문건을 작성토록 지시한 인물이다.
이 문건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올 1월쯤 보고됐으나 '찌라시' 취급을 받아 별다른 후속조치 없이 묻혀버렸다는 게 청와대 공식해명이다. 이후 박 경정과 조 전 비서관은 순차적으로 청와대에서 밀려났다.
정씨의 국정개입 정황을 담은 문건의 신빙성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60% 이상"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해명과는 달리, 공직기강비서관이라는 무게감을 가진 인물이 근거 없는 보고를 했겠느냐는 항간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발언이다.
그러나 정 씨와 '십상시'가 주기적으로 만났는지 여부는 박 모 경정이 직접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모임에 참석한 인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박 모 경정이 보고한 것이라고 조 전 비서관은 전했다. 그는 "(첩보가 맞을 가능성이) 6∼7할 정도 되면 상부보고 대상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사자인 정 씨와 실세 비서관 3인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모두 부인해왔다. 만남 자체를 갖지 않았으며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의 인터뷰에 따르면 최소한 이재만 총무비서관은 지난 4월까지 정 씨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연락을 주고받은 것을 가지고 정 씨의 국정개입을 사실로 단정하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조 전 비서관의 말이 맞다면 정 씨를 포함한 청와대 실세 비서관들이 언론과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가장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부분은 실세 비서관 3인의 인사개입에 대한 증언이다. 지난해 10월께 조 전 비서관은 경찰공무원에 대한 인사검증을 한 뒤 '부적격' 판정을 내린 적이 있는데,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이 연락해와 "이 일을 책임질 수 있느냐"며 따졌다는 것이다.
이에 조 전 비서관이 "문제가 있어 어쩔 수 없다"고 하자 한 달 뒤쯤 민정비서관실 소속 경찰관 10여명을 한 번에 내보내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이어 후임들을 '단수'로 찍어 명단을 내려보냈다고 한다. 조 전 비서관은 이를 안 비서관의 조치로 판단한다며 "경찰 인사는 2부속실에서 다 한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전했다.
총무비서관은 청와대 살림을 맡고 있으며, 제1부속비서관은 대통령 외부일정이나 면담 조율을, 제2부속비서관은 애초 영부인 일정을 챙기던 자리지만 지금은 비공식민원 등을 처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 정식 인사라인이 아니다.
실제 비서관들의 인사개입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청와대 인사를 책임지고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도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실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공식 인사라인 이외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라며 만만회(박지만ㆍ이재만ㆍ정윤회) 혹은 실세 비서관 3인방의 인사개입은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한 바 있다.
'정씨와 실세 비서관 3인'의 전횡과 관련한 증거를 수집해온 조 전 비서관은 검찰수사를 앞두고 그들과의 정면승부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참모진을 전적으로 신뢰한다"는 취지의 말을 하고, 비선정치 등 의혹은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밝히면서 검찰 수사에 대한 '지침'을 내린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정씨는 이날 중앙일보와 인터뷰에서 "청와대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한다"며 "민정에서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당할 국민이 대한민국에 어디 있느냐"고 밝혔다. 특히 박 경정과의 통화내용을 거론하면서 "(민정수석실이) 조작된 문건을 공식 문서화 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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