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신범수 기자] '정윤회씨 국정개입' 의혹이 향후 검찰수사를 통해 어디까지 파헤쳐지느냐에 따라 3년차 박근혜정부의 운명이 갈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의혹 중 일부라도 사실로 밝혀질 경우 국정동력의 심각한 훼손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1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선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란 입장을 밝히며 정면 대응을 선택했다. 다만 보고서 작성과 보고과정, 유출경로 등에 대한 배경은 검찰 수사로 넘긴 터라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논란은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문건 속 '권력암투'…박 대통령은 알고 있었나= 이른바 '비선 실세'로 불리는 정씨의 국정개입 정황을 알려주는 청와대 내부 문건이 공개되고 사흘이 흘렀지만 핵심 쟁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문건에 등장하는 당사자 몇 명이 언론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한 것 정도가 새롭게 나온 정보다.
사안의 핵심은 정씨가 청와대 실세들을 조종해 국정운영에 개입했는지 여부다. 검증이나 선출을 통해 공직에 진출한 것도 아니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민간인 정씨가 주요 공직자 인선이나 청와대 운영방식 등에 간여해왔다면 정권의 존립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최대 '스캔들'로 비화될 수 있다.
반면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사안의 핵심을 '기밀문서의 외부유출'이란 공직기강 해이 측면으로 몰고 가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두 핵심사안인 정씨의 국정개입 사실 여부와 문건 유출경로에 대한 진실은 앞으로 진행될 검찰조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와는 별개로 박 대통령이 지난 1월 작성된 이 문건을 보고받고 인지했느냐에도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등 비서관 3인(이른바 문고리권력 3인방)이 박 대통령의 묵인이나 재가 없이 정씨와 정기적 만남을 갖고 국정을 논했을 수는 없었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이런 측면에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정씨의 국정개입을 문제 삼은 것은 박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 반발이 되기 때문에, 문건 작성을 주도한 조응천 공직기강비서관과 박 모 전 행정관이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문건의 유출과 공개는 조 비서관과 박 전 행정관이 박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회장을 대변하며 정씨를 견제하려 한 구도에서 나온 것이란 관측이 무성하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친인척보다는 '비선 라인'의 손을 들어준 셈이 되고, 이는 부적절한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박 대통령에게 최대 위기를 가져다줄 수 있다. 물론 박 대통령의 1일 발언처럼 '사실무근'이란 판단에서 적극적 대응을 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반면 청와대는 해당 문건이 김기춘 비서실장까지만 보고됐으며 박 대통령에게까지 이르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하고 있다. 내부 조사결과 '사실무근'으로 밝혀지며 김 실장 차원에서 사안을 종료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권 핵심 인사들이 거론되는 '권력암투설'이 시중에 파다하고, 이를 공직기강비서실 차원에서 문건까지 작성한 상황에서 대통령에게 보고도 하지 않았다는 설명은 궁색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청와대의 설명대로 박 대통령과 무관한 일이라 해도, 청와대 실세 비서관들이 비선 라인과 함께 중요한 정책·정치적 결정을 내려왔다는 게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에 대한 '배신행위'가 될 수 있어 향후 후폭풍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내부문건 유출, 누가? 왜?= 사안을 둘러싼 또 다른 쟁점은 청와대 문건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떤 목적에서 외부로 유출돼 공개되기까지 이르렀는가다. 이것은 단순한 '공직기강 해이'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 청와대 내부 권력투쟁의 면면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가 된다.
문건의 유출과 공개가 '정윤회+문고리3인방' 대 '박지만+공직기강비서관실' 혹은 김기춘 비서실장 사이 권력다툼의 끝판에서 터져나온 결과물로 볼 수 있다는 측면에서, 문건 유출에 관여한 사람과 세력을 밝혀내는 것은 핵심 권력을 둘러싼 암투가 어떤 양상으로 흐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핵심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한편 이 모든 사안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단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며 즉각 검찰로 공을 넘기는 자신감을 보였고, "이번 기회로 사실이 드러나길 기대한다"는 취지의 말들을 하고 있다. 또 정호성 비서관이나 정윤회씨 등 핵심 당사자들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결백함을 호소하며 검찰조사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왜 이런 문건이 만들어졌고 어떤 목적을 가진 측의 기획물인지 밝혀내는 일이 다음 수순이 될 전망이다.
신범수 기자 ans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