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의 삼성 계열사 인수 저력은
-기존 사업과 거리 먼 분야도 과감히 투자…적극적 M&A로 성공안착 노하우 축적
[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한화그룹의 성장배경에는 기업 인수합병(M&A)이 있다. 그간 한화의 M&A 역사를 보면 불경기 속에서도 규모를 키워 내실을 다지는 정공법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때로는 기존 사업분야와 무관한 곳에 뛰어들 때도 M&A를 통해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한화는 과거 50~60년대 국내에 M&A라는 개념이 흔치 않을 때부터 M&A를 중요한 사업전략으로 여겼다. 1957년 인수한 조선유지, 1964년 인수한 신한베어링공업을 통해 이전까지 외국산에 의존하던 화약류, 베어링을 국산화했다. 한화건설(구 동원공업), 한화투자증권(성도증권) 등 현재 주요 계열사도 70년대 사들인 회사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취임한 1981년 이후 M&A에는 속도가 붙었다. 그룹의 주력사업인 석유화학업체 한화케미칼을 인수한 게 김 회장 취임 바로 다음 해다. 당시 다우케미칼은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해 글로벌 석유화학 경기가 크게 위축되자 한양화학과 한국다우케미칼을 매각하기로 했다. PVC를 생산하고 있던 한화는 원료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한양화학 인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으나 당시 전 세계적으로 석유화학 경기가 좋지 않아 그룹 내부에서도 찬반이 엇갈렸다. 김 회장은 향후 석유화학 시장이 커질 것으로 확신하고 인수를 밀어붙였다. 한화는 두 회사를 인수하고 10대 그룹에 편입됐다. 1980년까지 7300억원 수준이던 그룹의 매출액은 1984년 2조150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유통ㆍ레저 등 기존 사업분야와는 거리가 먼 분야까지 사세를 넓혔다. 1985년 정아그룹, 이듬해 한양유통을 인수해 현재 한화호텔앤드리조트, 한화갤러리아로 키워냈다. 정아그룹은 당시 리조트업계의 선두주자로 꼽혔으나 무리한 확장과 관리부실로 파산했다. 한화그룹에 편입된 후 법정관리를 졸업했고 이후 종합레저기업으로 거듭났다. 한양유통 역시 인수 당시 적자기업이었으나 4년 만에 매출액을 2배 수준인 2100억원으로 늘렸다. 한화갤러리아가 2000년에 인수한 동양백화점은 인수 전 3년간 적자상태였으나 이후 갤러리아타임월드로 이름을 바꿔 대전지역 1위 백화점이 됐다.
90년대 외환위기 이후 금융업에 주목했고 당시 매물로 나온 대한생명을 M&A 목표로 낙점했다. 2002년 당시 누적손실액이 2조3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국내외 기업 모두 인수를 꺼렸던 회사다. 한화그룹은 맥쿼리 등과 함께 컨소시엄을 구성해 그룹 M&A 역사상 최대규모인 8236억을 써 인수했다.
그러나 당시 컨소시엄을 구성했던 맥쿼리에 인수자금을 빌려주고 허위로 참여케 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이후 6년여간 대법원과 국제상사중재위원회까지 거치면서 잘못이 없다는 점이 입증됐다. 이후 한화그룹은 2008년 제일화재해상보험(현 한화손해보험), 같은 해 새누리상호저축은행(현 한화저축은행), 2010년 푸르덴셜투자증권 등 금융회사를 잇따라 사들였다.
가장 최근에 인수한 큐셀(현 한화큐셀) 역시 인수 당시 적자가 4600억원에 공장가동률은 30%에도 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한화그룹에 편입된 이듬해 바로 흑자를 내는 알짜기업으로 변했다. 특히 최근 들어 중국 등 신흥시장의 태양광시장 성장속도가 과거에 비해 더뎌지고 업체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거둔 성과라 더 의미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화는 앞서 2010년 인수한 솔라펀파워홀딩스(현 한화솔라원)와 함께 글로벌 태양광업계 3위수준까지 도약했다.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2008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참여 등 때로는 무리한 M&A 행보에 대해 비판을 받았다. 당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양해각서까지 맺었지만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겹치면서 인수금액을 마련하지 못해 이행보증금 3000억여원을 날리기도 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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