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소비자들은 은행ㆍ카드사 등 금융회사보다 금융감독기관을 더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금융연구원이 어제 처음 조사해 발표한 금융신뢰지수를 보면 금융위원회ㆍ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지수가 61.3으로 최하위였다. 100을 넘어야 긍정적 답변이 많다는 뜻인데 이 정도면 낙제점이다. 감독기관의 소비자 보호 노력(74.3), 정부의 금융정책(76.1), 금융제도의 공정성과 합리성(77.9)은 조금 높긴 해도 9개 조사항목 모두 100 아래다.
금융당국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에도 KB금융 내분에 갈팡질팡했다. 엄청난 고객 정보가 카드사와 은행에서 빠져나갔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동양그룹 사태 때에는 부실 징후를 포착하고도 방관해 문제를 키웠다. 저축은행 사태에선 금감원 직원이 연루되기도 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사고를 사전 감독으로 예방하기는커녕 사후에 합당한 제재도 취하지 않았다. 사고가 터진 뒤 내놓는 대책도 사후약방문에 땜질 처방에 그쳤다. 수많은 금융규제와 관치, 낙하산 인사로 금융사를 압박하고 거느리려 들었지 정보통신기술(ICT) 발달과 글로벌 금융환경 변화에 따른 금융산업 발전 방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마침 같은 날 금감원은 '검사ㆍ제재 업무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감독 방식을 사후 적발에서 사전 예방 위주로 바꾸고 금융사에 대한 감독ㆍ검사 자료 요구도 최소화하겠다고 한다. 혁신이란 말로 포장만 했지 눈에 띄는 내용이 없다.
금융사들도 반성해야 한다. 금융사의 고객 서비스(96.6)나 금융 종사자에 대한 신뢰도(90.5)가 금융당국 신뢰도보다야 높지만, 역시 100에 못 미친다. 소비자의 금융산업 전반에 대한 불신이 크다는 방증이다. 오죽하면 은행들 스스로 다음 달을 '묻혀진 금융사고 자진신고 기간'으로 정했을까.
고객 자산을 맡아 운용하는 금융산업은 신뢰가 생명이다. 국내 금융 소비자의 신뢰가 바닥인 상황에서 아무리 금융허브ㆍ녹색금융ㆍ창조금융을 외쳐도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금융당국과 금융사 모두 환골탈태해야 한다. 당국은 감독체계를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금융사는 윤리 회복에 나서야 한다. 심각한 고객의 금융불신을 알고서도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한국 금융산업의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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