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높여 담배 끊도록 유도한다지만 세수효과가 오히려 더 커
나성린 "인상분 모두 건강증진기금에 활용하는 것은 무리"
[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정부가 최근 밝힌 담뱃값 인상 방침은 이번 추석연휴 일가친척이 모인 자리에서 좋은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애연가들은 "팍팍한 세상살이에 그나마 담배에서 위안을 얻는데, 그것마저 값을 올리냐"며 반대하는 반면, 나머지 가족들은 "이번 기회에 아예 끊어라"라며 압박을 가하는 식이다.
정부가 밝힌 담배가격 인상 폭은 갑당 2000원선. 2500원인 담배라면 4500원까지 오르는 것이다. 인상폭이 무려 50%에 육박하는 파격적인 안이다. 애연가들의 부담이 상당하다는 점에서 이들의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담뱃값을 올리는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민감하다. 국민건강증진법, 지방세법 등 관련법을 개정해야 하는 '업무'측면도 있지만 민심의 향배를 읽어야 하는 '정무적'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고민은 '증세를 하는 것 아니냐'는 데서 오는 부담이다. 말로는 그럴싸하게 국민 건강을 높이기 위해 담뱃값을 인상한다고 하는 것일 뿐, 진짜 목적은 세수를 늘리는 방편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부자를 대상으로 한 직접세 대신 서민들의 지갑을 노리는 간접세만 건드린다'는 식의 불만도 포함돼 있다.
현재 2500원짜리 담배 한 갑에서 담배회사의 출고가와 유통마진은 38%를 차지한다. 나머지 62% 가운데 국민건강증진부담금과 폐기물 부담금이 14.5%. 47.5%가 담배소비세, 지방교육세, 부가가치세 등의 세금이다. 부담금을 준조세로 본다면 사실상 62% 모두 세금으로 봐도 무방하다. 이 같은 가격 구조를 감안할 때 담배가격 인상에 따른 세수 확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담배가격 인상에 따른 재정영향 분석 보고서를 통해 담배가격을 2000원을 올리면 수요가 20.5% 줄어드는 효과와 함께 세수는 5조2000억원이 늘어난다고 밝힌 바 있다. 수요를 줄이는 것 보다 세수 확충 효과가 오히려 더 크다.
국회의원들은 '건강증진'과 '세수효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세수결손과 국민건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담뱃값 인상안을 발의한 김재원 새누리당 의원은 "2000원을 올리되 단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세수만 늘릴 뿐, 담배 끊는 효과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반대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증세 논란을 피하기 위해 담뱃값 인상분을 모두 건강증진기금으로 사용하자는 주장도 펴고 있다. 이에 대해 나성린 새누리당 정책위 수석부의장은 "전부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도 가격 올리기에 딱히 반대할 명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우윤근 새정치연합 정책위의장은 "간접세를 올리는 식으로 증세하는 것에는 반대지만 국민건강을 생각한다면 인상할 필요는 있다"며 복잡한 속내를 밝혔다.
기획재정위원회 간사인 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은 "기재위 뿐 아니라 복지위 안행위 등 여러 상임위에 이슈가 걸쳐 있는 만큼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을 아꼈다.
국회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조세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재정수입의 용도를 적극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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