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테크노밸리'의 주말 출근 풍경
[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 "굳이 일이라고 할 게 있나요, 뭐. 노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23일 토요일, '리니지2' 업데이트 작업 때문에 출근한 엔씨소프트 프로그래머 김민우(36ㆍ가명)씨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주말 출근의 압박감은 느낄 수 없었다.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잔뜩 사들고 들어오던 그는 작업실에 올라가기 전 회사 로비 소파에 앉아 모바일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평일, 주말 구분 없이 일하느라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그에게 일은 놀이의 연장이었다.
김 씨는 올해로 10년째 게임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가정을 꾸리기 전에는 일이 없는 주말에도 '놀러' 회사를 찾았다고 한다. 주말 오전 시간에 출근한 뒤 보고하면 회사에서 대체휴가를 마련해주고 별도의 식대를 챙겨주지만 김씨를 비롯한 동료들 대부분은 회사에 굳이 보고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판교 테크노밸리에 상주하는 개발자들에게 주말 근무는 일인 동시에 놀이요, 쉼이다. 문을 닫은 가게가 태반이고 분수의 물 뿜는 소리와 매미 우는 소리가 평일보다 두 세배는 크게 들리는 한가한 주말. 한산하고 여유로운 거리 풍경만큼 이들의 표정에서도 여유가 묻어났다. 주말 출근을 장려하는 회사는 한 곳도 없다. 국내 1위 보안업체 안랩과 모바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카카오 등은 아예 회사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나 업무환경이 비교적 자유로운 개발자들은 평일과 주말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게 문제는 식당이다. 평소 자주 이용하는 구내식당과 카페는 물론 주변 식당들도 절반 가까이 영업을 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도시락이나 패스트푸드, 편의점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분당 외 거주자들에겐 평일보다 자주 다니지 않는 버스도 골칫거리다. 을지로에서 판교까지 이어주는 9007번 버스의 경우 배차간격이 15~30분으로 돼있기는 하지만 40분이 넘도록 안내판엔 '도착 예정 버스 없음'이란 글자가 주말 교통편 상황을 알려줬다.
강제성도 없고 주말엔 근처 편의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지만 개발자들의 출근을 부추기는 데엔 일하고 싶은 회사 분위기도 한몫 한다. NHN엔터테인먼트 사옥은 '플레이뮤지엄'으로 불릴 만큼 회사 전체가 놀이공간이다. 상반기 공채로 NHN엔터에 입사한 두명의 20대 청년은 해맑은 얼굴로 "회사가 좋아서 나왔다"고 말했다. 한가한 주말 오후 테마방 형식으로 꾸며진 회의실에 앉아있으면 아이디어가 마구 떠오른다. 이들은 신입사원 프로젝트로 새로운 게임 개발에 골몰하고 있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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