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7·30 재보궐 선거를 보름가량 앞둔 7월 어느 날 저녁. 여의도의 한 포장마차에서 야당 당직자와 보좌관들이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전략공천 파동으로 당 안팎이 시끌시끌한 상황에서 이들은 재보선을 안줏거리로 삼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략공천 때문에 이번 재보선에서 5석도 못 건지는 거 아냐?" 한 참석자가 운을 뗐다. 나머지 참석자들의 얼굴에서는 '설마' 하는 분위기가 읽혔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이윽고 또 다른 참석자가 한 마디 던지자 분위기는 정리됐다.
"아무리 야당이 못해도 8대 7 내지는 7대 8로 결정될 거야."
'후견지명(後見之明)'을 해보자면 이번 선거에서 야당은 느긋했다. 텃밭인 호남은 당연하고 수도권에서도 3석 이상을 가져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곳곳에서 경쟁후보에 밀린다는 경고가 들어왔지만 막상 유권자들이 투표용지를 받아들면 지지층은 결집할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결과는 11대 4의 완벽한 패배였다.
최근 재보선에서 야당은 그동안의 법칙 아닌 법칙을 깼다. 바로 여당이 재보선에서 참패한다는 법칙이다. 2010년 이후 상황을 보면 확연하다. 2010년 7·28부터 이번 7·30까지 총 5차례 국회의원 재보선이 있었지만 스코어상으로는 4대 1로 여당이 완벽한 우세를 보였다.
돌이켜 보면 야당의 여유는 이번 재보선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지난 6ㆍ4 지방선거에서 야당은 17개 시도 광역단체장 가운데 절반을 웃도는 9곳에서 당선자를 배출했음에도 내용 면에서는 패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당은 선거 막판 지도부가 총출동해 1인 홍보에 열을 올렸지만 야당은 여론조사를 믿으며 느긋해했다.
지금의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2004년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152석을 점유한 게 유일하다. 그것도 열린우리당이 잘해서라기보다 대통령 탄핵을 추진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에 대한 역풍이 분 결과였다.
야당이 선거에서 매번 패하는 것은 정권심판론이라는 프레임만 초지일관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지방선거는 물론이고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도 판박이처럼 '정권을 심판해달라'고 호소했다. 결과는 야당이 오히려 심판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상황에 따른 이슈 발굴이 떨어진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다. 이는 선거를 이기겠다는 절박함이 그다지 읽히지 않는다는 의미와 상통한다. 내부적으로 수명이 다했다고 판단한 야권연대 카드를 끌고 나온 것도 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재미없는 선거전략의 부작용은 이미 드러나 있다. 선거 자체에 대한 흥미는 떨어졌고 '보수는 기호 1, 진보는 기호 2번'이라는 구도는 고착화된 지 오래다.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습을 보여야 유권자들의 관심을 끄는데, 결과가 뻔하다면 투표할 리 만무하다.
선거의 흥미를 떨어뜨린 데는 야당의 잘못이 더 크다. 비판만 할 줄만 알지, 야당이 무엇을 잘 하는지 아는 유권자는 드물다. 내후년 4월까지 굵직한 선거가 없다. 변화할 수 있는 이번 기회마저 놓쳐서는 안 된다.
최일권 기자 ig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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