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어느 백화점이 내건 10억원짜리 경품은 경기부진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올 들어 반짝했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은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사라지고 말았고, 경제연구소들의 성장률 하향 전망에서 볼 수 있듯 한국 경제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어쩌다가 상황이 이리 됐을까? 그 원인을 따져보자. 지금 와서 하나씩 돌이켜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는 실패가 예정돼 있었다. 경제의 성공에 필요한 요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책임 있게 정책을 펴나갈 주체가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부친으로부터 배운 대로 청와대를 중심으로 강력한 중앙집권적 의사결정구조를 구축했고, 정부 부처의 역할을 축소했다. 70년대식 의사결정구조다. 하지만 중요한 게 빠져 있었다. 포병장교 출신답게 직접 지도를 펴놓고 각종 개발계획을 입안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해낸 박정희 대통령과는 달리 박근혜 대통령은 모든 권한만 움켜쥔 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게 없고 기다리기만 했다. 청와대가 쥐고 흔드는 모양만 흉내냈을 뿐 실제 운용은 딴판이었던 셈이다.
둘째, 박근혜정부의 유일한 경제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창조경제의 실체가 너무 없었다. 선거 공약으로 출발한 창조경제는 개념 자체도 모호하지만 제대로 추진됐더라도 경기진작에 큰 도움이 될지 의심스럽다. 창조산업을 중점 육성한다는 것이라면 고용창출에 한계가 있고, 혁신 중심의 경제라면 기업들에 맡기는 편이 더 낫기 때문에 경제정책이라고 부르기가 애매하다. 콘텐츠 산업이 중요하기는 하나 나라를 먹여 살릴 정도는 되지 않는다.
셋째, 박근혜 대통령은 전임 이명박 대통령의 실패한 정책(4대강 등)으로 인해 경기가 급속도로 하락국면에 접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취임했지만 분위기 반전의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김영삼 정부(100일 계획), 김대중 정부(카드사용 확대) 등 역대 정부가 취임초기 단기적인 경기부양을 도모한 것과 대조적이다. 반면 박근혜 대통령은 비경제 분야에만 골몰하면서 지지율에 만족하다가 그 시기를 놓쳤다. 그렇다고 중장기계획을 수립ㆍ시행한 것도 아니다. 과거 정부가 취임 초 신경제5개년계획(김영삼), 4대부문개혁(김대중)을 수립해 집권기간 내내 실행에 옮긴 것과 달리 집권 초에 해야 할 거대 청사진 수립의 시기를 놓쳤다. 이른바 정권 초기 1년6개월의 골든타임을 허비하고 만 것이다.
한마디로 정책결정구조(거버넌스)를 제대로 정립하지 못했고, 정책 방향과 내용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등판한 최경환 경제팀의 앞길은 첩첩산중이다. 상황은 나빠지는데, 금융정책이나 재정정책 등 쓸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규제완화 말고는 특별히 내놓을 게 없는 처지가 이해는 간다. 그러나 급할수록 서둘러선 곤란하다.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선 시급한 건 실종된 거버넌스를 확립하는 일이다. 청와대가 아닌 시장과 국민에 눈을 맞추고, 경제정책과 집행에 관한 한 리더십을 확보하는 일이 선결과제다.
또한 정책에 있어선 발상의 전환이 절실하다. 기존 발상에 얽매여선 현상 타파가 곤란하다. 이제 복지는 내수부양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복지예산이 늘어난다고 소득세를 더 걷는 식의 정책으론 곤란하며, 세수 확보가 시급하다면 법인세율 인상도 고려하는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법인세인하=투자확대'라는 공식은 깨진 지 이미 오래다.
일자리 문제도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취업지원 정책 정도론 해결이 안 되며 보다 큰 정책이 필요하다. 최근 삼성전자 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대기업이 해외공장에만 투자하고 국내 일자리를 묶어두는 현실에선 일자리 창출을 기대할 수가 없지 않을까? 이 점에서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 유턴할 수 있는 정책 발굴이 절실하다. 경제의 흐름이 막힌 곳을 뚫어주는 정책도 필요하다. 이 점에서 LTV나 DTI 등 사문화된 규제 철폐는 금융건전성만 지킨다는 전제하에 침체된 분위기 반전에 효과가 있을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각오 속에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 문제에 혼신의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최성범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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