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중소기업이 강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장인정신과 혁신, 유능한 인재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중요한 하나는 '클러스터(cluster)' 활동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클러스터는 1990년대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 <국가의 경쟁우위>에서 정립한 개념으로 '산업집적지'를 뜻한다. 하지만 이 클러스터는 단순히 생산기업들만이 모여 있는 곳이 아니다. 부품공급 업체와 연구소, 대학, 금융기관 등 지원기관까지 일정 지역 내 위치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연구개발의 시너지를 창출하는 공간이다.
독일에서 클러스터 활동이 가장 활발한 지역은 '라인강의 기적'의 중심지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NRW)다. 뒤셀도르프, 쾰른, 에센, 도르트문트, 아헨 등이 속한 NRW는 독일의 16개주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독일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을 만들어낸다. 이 지역에만 75만개의 기업이 있고 이 중 64%인 48만개 기업이 클러스터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의료, 나노, 마이크로 자동차 등 16개의 클러스터가 있고 이 중 의료클러스터에는 일반 의료, 바이오ㆍ제약, 의료기술 분야 등 3개의 서브 클러스터가 있다. 각각의 서브 클러스터에서는 차세대 의료 관련기술의 연구와 상용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다른 서브 클러스터들도 각자의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의 중심이 되고 있었다.
지난 3월 이 지역을 둘러볼 기회가 있어 다양한 클러스터를 접할 수 있었다. 국내 중소기업이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이들을 적극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느꼈다. 이들 클러스터 활동을 지원하는 기관인 NRW인베스트와 양해각서를 맺은 것도 양국의 교류를 통해 클러스터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해서다.
클러스터 활동에 나서는 것은 비단 독일만이 아니다. 세계 각국이 클러스터 활성화를 통해 기업은 물론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클러스터에 집중하는 이유는 하나다. 현대는 융합의 시대기 때문이다. 이제 한 가지 기능 혹은 기술만으로 첨단 제품을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혁신의 상징인 '아이폰'도 혼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결국은 여러 가지 기능의 융합 제품이다. 그리고 융합을 위해서는 생산과 부품, 연구가 한 데 모인 클러스터 활동이 필수적이다.
이런 세계적 변화의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클러스터 활동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반월ㆍ시화산업단지의 대모엔지니어링은 20여개 협력사들과 클러스터를 조직해 품질개선에 나섰으며, 에이스기계는 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신제품을 내놓고 있다. 구미에서 3D프린팅산업협회가 출범한 배경에도 클러스터 활동에 있었다. 지난해 7월 구미의 기업주치의센터가 주관한 기술사랑방 모임이 협회로 발전한 것이다. 3D프린터는 세계 각국이 각축을 벌이는 차세대 먹거리로 꼽히는 분야로, 향후 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많은 시너지가 기대된다.
전국의 산업단지에서 산학연 혁신네트워크인 미니클러스터가 70여개 결성돼있고 기업, 연구소, 대학, 지원기관 등에서 72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앞으로 클러스터 활동이 더 활발해지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기업들이 서로 '자기 것'을 내놓는 여유가 필요하다. 자신이 보유한 기술과 노하우를 내놓고 상대방 기술과 결합시켜야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야 비로소 클러스터 활동을 통해 혁신적인 기술과 제품의 개발이 가능한 것이다. 성과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참여와 배려의 정신이 깃들어야 클러스터 활동이 성공할 수 있고, 국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클러스터 전쟁'에서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강남훈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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