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유수경 기자]한때 조진웅은 ‘덩치 크고 연기 잘하는’ 배우로 통했다. 그런데 어느덧 한국 영화계를 이끌어갈 거물로 성장했다. 그가 등장하면 일단 작품성이나 연기력 면에서는 의심을 품는 이들이 거의 없다. 현재 상영 중인 ‘끝까지 간다’를 통해서는 ‘괴물 같은 배우’라는 평도 들었다. 참 무서운 연기자임에 분명하다.
어떤 역할을 입혀도 척척 알아서 소화해낸다. 바보처럼 착하고 부성애 넘치는 말더듬이 아빠(‘화이’)였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형사(‘끝까지 간다’)가 된다. 극중 박창민은 그저 ‘악랄하다’라는 표현으로는 좀 부족한 악역의 끝장판이다.
이 배우는 자신의 연기에 대한 고민과 연구도 거듭하지만, 한국 영화 촬영 현장이 개선돼야 한다는 생각도 강하게 품고 있다. 10년 동안 영화 작업을 해왔고, 현장의 문제점이나 어려운 점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끝까지 간다’ 언론시사회 당시 그는 “영화 환경이 개선되야 한다”고 농담처럼 툭 던졌지만, 최근 아시아경제와 만나 훨씬 더 밀도 생각들을 전했다.
“우리 나라에선 조감독이 감독이 되기 위한 발판으로 여겨지죠. 그런데 할리우드에서는 조감독만 평생하는 분도 있고, 현장 로케만 평생 맡는 사람도 있어요. 조감독이 엄청나게 중요한 포지션이기 때문에 전문성을 띠어야 하죠. 의식적인 문제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조감독이 대우를 못 받는다는 인식이 강한 게 사실이에요. 그런 면에서 환경이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조진웅은 “조감독 한명이 잘 돌아가면 영화는 끝장 난다”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환경이라는 것은 배우들의 처우가 좋아져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스태프들에 대한 대우가 좋아졌을 때, 관객들에게 훨씬 아름답고 즐거운 영화를 선사할 수 있다는 것. 그는 “대충 하는 백만 대군을 데려와도 열심히 하는 십만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끝까지 간다’의 신소영 조감독은 ‘일당백’이었다며 칭찬할 만 했다고 털어놨다.
또 조진웅은 조감독 뿐만 아니라 스크립터를 비롯, 모든 포지션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화 현장에서 어떤 일을 맡아서 하더라도 전문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지였다.
더불어 그는 대한민국 배우들의 연기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우리 나라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한다. 그 어느 나라보다 뛰어나다”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이병헌 등 배우들의 할리우드 진출에 대해서는 “대단한 일로 취급받을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지는 때가 와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외국 자본을 활용할 수 있는 많은 마켓을 열어야 해요. 대한민국에서 제작된 영화들끼리 싸우는 건 의미가 없죠. 우리가 왜 ‘하이힐’이나 ‘우는 남자’를 견제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영화들을 가서 봐야 하는데, 할리우드 영화를 견제해야 하는 게 사실이죠. 영화제들을 통해서 마켓을 열고 다양한 방식을 통해 외국 자본을 유입해야 해요.”
끝으로 조진웅은 “이제 많은 역사와 문화 개혁이 필요하다”며 “영화 현장에는 너무나도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 술 마시는 시간을 줄이고 다함께 심포지엄을 열면 된다.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고 퀄리티 수업이다. 그런 시도들이 우리 영화를 발전시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끝까지 간다’는 5일 기준 누적 관객수 94만 8892명을 달성, 백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유수경 기자 uu8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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