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한의 팽목항에서 적는 참회의 기자수첩
[진도(전남)=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가까이 있는데 왜 볼 수가 없니….'
진도 팽목항 방파제에 펄럭이는 노란 리본에 쓰인 글귀를 보며 '가까이 있는데 느낄 수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를 떠올린다. 꼭 한 달 전,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이후 우리는 최소한의 안전을 담보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던 그 울타리가 눈앞에서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광경을 보고 있다.
국민에 의무를 지우는 데는 추상같던 국가가, 생으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한 달간 무엇을 해줬는지 돌이켜본다. 수백 명이 바다에 가라앉고 있는데 '전원 구조'라는 오보를 내더니, 실제로 전원 구조도 불가능하지 않았을 만큼의 골든타임을 모조리 흘려보냈다. 대책을 내놓는답시고 찾아오는 정관계 인사들은 '의전'을 잊지 않았고,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라는 곳에서는 실종자 숫자조차 수차례 번복하며 우왕좌왕했다.
그사이 남은 가족들에게 닥쳐온 현실은 '구조'가 아니라 '시신'을 기다려야 하는 재앙으로 바뀌었다. 줄어든 실종자가 사망자에 더해지면서 진도체육관에는 무거운 정적이 깔렸다. 팽목항에도 침묵이 늘어나긴 마찬가지였지만 이따금 실종자 가족 몇몇이 경찰의 보호를 받으며 방파제 끝까지 걸어가 시퍼런 바다를 마주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들은 벼락처럼 짧은 오열을 토하고는 이내 되돌아가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슬픔을 넘어, 차라리 간절한 의식(儀式)처럼 보였다.
언론은 아비규환의 한복판에 앞다퉈 카메라와 마이크를 들이댔다. '사진 찍지 마세요'라는 문구가 붙어있는 팽목항 '가족대책본부' 부스를 맴돌던 기자들은 안에 있던 한 남성이 부스 천막을 거칠게 걷어내며 "왜 자꾸 들여다봐!"라고 고함치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진도실내체육관 바닥에 이부자리 몇 장 깔고 앉은 가족들은 환한 조명 아래 24시간 무방비로 노출됐다. 생지옥의 한 달을 보내면서 가족들은 어떠한 감정도 분출할 기운이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결국 2층 스탠드 뒷공간에서 가족들을 촬영하던 몇몇 기자단의 침구류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철거되기에 이르렀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이미 수없이 '배신당한' 그들에게 기자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있는 자체가 불신을 더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휩싸였다. 재난을 보도하는 일에서 타인의 고통을 '전달'하는 일과 '전시'하는 일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표정과 눈물을 전해야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 기준은 어디까지인지 수시로 각성해야 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시스템이 실종된 현장에 남은 건 개별 인간 사이의 위로뿐이었다. 풍랑주의보로 수색이 중단된 며칠 동안 집에 다녀온 한 실종자 어머니가 팽목항에서 식사 제공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모씨를 찾았다. 파리한 안색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비워둔 집에 남아 있는 다른 자식과 아이의 할머니에게 김씨가 끓여준 곰국을 갖다주고 오는 길이었다. 김씨에게 "날씨가 험했을 텐데 여기서 어떻게 잤냐"며 비바람이 몰아치던 간밤의 안부를 묻고는 "덕분에 가족들이 당분간 끼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고마워했다. 열 일곱 살 된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아픔이 있는 김씨는 사고 당일부터 팽목항에서 따뜻한 식사를 만들어내며 실종자 가족들이 울 때마다 같이 울었다.
이토록 선한 개인들의 의식을 전혀 따라가지 못할뿐더러 최소한의 보호조차 해주지 못하는 국가의 시스템이, 그리고 그 시스템을 감시해야 할 언론이 도대체 어디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아픈 사람들끼리 아픔을 공유하는 것 외에 믿을 곳 하나 없는 진도의 좌절, 그것이 평생 세금 내고 법 지키며 살아온 나라에서 이들에게 주어진 몫이었다.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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