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옳았다. 인간이 하는 행동의 99%는 습관에서 나온다. 며칠 전 새벽, 간만에 운동이나 하겠다고 집을 나선 길이었다. 얼마간 걷다가 뭔가 켕긴다 싶어 아래를 내려다보니, 웬걸. 운동화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구두가 보이는 게 아닌가. 운동복과 어울리지 않은 어색한 모습으로. 내(구두)가 지금 왜 여기에 있지, 하는 민망한 표정으로.
좋거나 나쁘거나, 습관은 우리 행동을 구속한다. 마치 태엽이 풀리면서 움직이는 장난감처럼. 학교에 자주 지각한 학생은 직장인이 되어서도 출근 시간을 종종 넘긴다. 술만 마시면 꺼이꺼이 우는 밉상은 언제가는 또 눈물 콧물 짜는 바람에 동석자들을 민망하게 만든다. 업무 마감이 늦는 사람은 늘 정해져 있다. 한 번, 두 번이면 실수이지만 세 번, 네 번이면 버릇이고 습관이다. 저 유명한 '하인리히 법칙'처럼. 1번의 대형 사고 전에는 300번의 징후와 29번의 경고가 있다. 그 경고와 징후를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을 뿐이다.
세월호 사고는 못된 인간들의 못된 습관이 부른 참사다. 수사 결과, 선체 이상에 대해 수십 번의 경고음이 울렸지만 번번히 묵살됐다. 알려진 것이 이 정도니 드러나지 않은 징후는 300번, 3000번을 넘었을 것이다. 습관처럼 과적하고, 습관처럼 규칙을 어기고, 습관처럼 자리를 비우고, 습관처럼 뻔뻔하고. 사고 수습 과정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무대책, 무책임, 무성의는 무한 반복 중이다.
무엇보다 두려운 습관은 우리 사회의 집단 망각증이다. 세월호 이전에도 성수대교 붕괴(1994년),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씨랜드 화재(1999년), 대구지하철 화재(2003년)가 꼬리를 물었다. 그때마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정부는 재발방지를 호들갑스럽게 약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모든 것은 망각의 늪에 묻혔다. 대책은 유야무야 사라지고 사고는 잊혀지고. 지금이야 세월호 참사를 많은 국민들이 애도하지만 이 분노와 절망도 머지않아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되는 것도 그래서다.
'습관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윌리엄 제임스의 말을 빌리면, 좋은 습관이 건전한 사회를 만든다. 홀로코스트의 잔혹사를 안고 사는 유태인들의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다짐처럼, 사고의 상처를 치유는 하되 사고 자체를 잊어서는 안된다. 또 다른 참사로 다시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으려면.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잊혀진 뉴스만 집요하게 다루는 언론이 있다면 어떨까. '잊지 말자, 대한민국'처럼.<후소(後笑)>
이정일 기자 jayl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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