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가면 가끔 월간 '자연과 생태'를 찾아 읽었다. 며칠 전 일요일에 3월호(제80호)를 펼치니 편집장 통신이 나왔다. 조영권 편집장은 이 매체를 창간하게 된 계기로 글을 시작했다.
그는 15년 전 어린이 대상 자연관찰 잡지를 만드는 일본의 한 작은 출판사를 알게 됐다. 그 출판사에서는 할아버지 한 분과 할머니 두 분이 매우 더딘 속도로 원고를 매만지며 책을 편집했다. 잡지를 발행한 지 50년이 됐고, 세 분은 젊은 시절부터 그 잡지를 만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주제가 지속성이 있고 제작한 내용이 자산이 되며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즐기면서 평생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이후 5년여 준비한 끝에 2006년 4월 현실적인 제약을 넘어, 혹은 열악한 상태에 몸집을 최소한으로 맞춰 '자연과 생태'를 창간한다.
누군가 자신이 무언가를 출범시킨 시기를 떠올린다면 그건 둘 중 하나다. 그렇게 시작해 오늘날 이렇게 키워냈노라며 그동안 기여하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경우가 첫째다. 대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두 쪽에 걸친 편집장 통신을 절반 가까이 읽었지만 상황이 호전됐다는 얘기로 넘어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였을 게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진화를 포기한 실험'. 그는 '자연과 생태'도 사회변화에 적응해 진화하며 살아남을 수 있지만 이 매체를 폐간하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끝을 고하려고 처음을 돌아본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 존재하느냐가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보다 중요했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생존하려면 타협할 일도 생기고, 마지못해 방향을 틀 때도 있으며, 대를 위해 소를 희생시키거나, 낯빛이 두꺼워져야 할 필요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을 '자연과 생태'가 겪지 않길 바랐습니다."
그는 "한계는 잡지가 아니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에게 있었다"고 말했지만, 넓게 봐서 동종업계에서 일하는 나로서는 그 생태계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활자매체가 처한 생태계가 날로 척박해진다. 처음부터 혹독한 환경을 감수하고 시작해 지탱해 온 이 월간지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니, 앞으로 더 많은 매체가 사라질 테고 아예 독자에게 선보이지도 못할 괜찮은 매거진이나 책이 더 많아질 것이다.
활자매체가 유통되지 않으면 제작되지 않는다. 제작되지 않으면 그만큼 생각이 짧아진다.
백우진 국제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