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에 흰 국화만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주인 잃은 교실은 숨죽여 흐느낀다. 기적을 바라는 노란 리본이 봄바람에 허망하게 부대낀다.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다시 볼 수 있으려나, 그들의 꽃 같은 모습을.
새벽 일찍 일어나 밥 한술 뜨는 둥 마는 둥 집을 나서지만 교실에 들어서면 왁자지껄 생기가 넘치던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 '내년이면 고3이구나' 한숨을 내쉬다가도 '무슨 소리! 아직 1년이나 남았잖아'하며 금세 화색을 되찾던 어쩔 수 없는 천방지축 어린 나이. 수업시간에는 어김없이 졸음이 밀려오지만 쉬는 시간에는 득달같이 매점으로 달려가던 그 환한 표정. 어느새 아빠 엄마만큼 키가 훌쩍 자라 세상이 내 것 같지만 아직은 상처받기 쉬운 여린 영혼.
엄마 잔소리 듣기 싫다며 방문을 쾅 닫지만 괜히 성질을 부리는 자신이 못내 싫은 성장통. 데면데면한 아빠이지만 피곤에 지쳐 소파에서 잠든 모습이 안쓰러워 슬그머니 담요를 덮어주던 그 손길. 이제는 '아빠' '엄마' 호칭이 어색하다면서도 아쉬울 때면 어리광 부리며 가슴팍을 파고들던 따뜻한 체온. 그래서 엄마 아빠에게는 '우리 착한 아들' '우리 예쁜 딸'.
생때같은 자식들을 삼킨 바다는 말이 없고 염치없는 어른들은 오늘도 꼴사납다. 라면 장관, 기념사진 국장은 말할 것도 없다. 엉터리 방송이지만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제자리를 지키다 희생된 아이들의 불행에 누구 한 사람 책임지기는커녕 내탓 네탓 공방이다. 그 틈에 활개치는 스미싱이나 악성 댓글은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린다. 승객 숫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재난대책본부는 이름값도 못한 채 아직도 우왕좌왕이다.
부실했던 선박 운항관리제도의 허점을 들춰내니 구린내가 진동한다. 자식을 품에 묻은 부모들의 분노와 충격을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일부 정치꾼들의 한심한 작태는 연일 구설수다. 언론들은 취재 윤리 운운하지만 이 시간에도 클릭 수를 높이려는 검색 키워드 대응에 분주하다. '반성한다'가 아니라 '반성하라'며 정부 각료를 몰아세우는 박근혜 대통령의 '3자적 화법'도 듣기 민망하다.
아비규환 속에서 사고를 처음 신고한 이는 학생이었다. 친구들 구하겠다며 물속을 헤매던 이들도 학생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를 위로하던 학생들이었다. 그 공포 속에서도 아빠 엄마가 제 얼굴 몰라볼까봐 학생증을 꼭 쥔 채 결국 주검으로 돌아오기까지, 2014년 대한민국에 어른은 없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 <후소(後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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