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태진 기자]증권가에는 이른바 '찌라시 문화'가 깊게 자리해왔다.
찌라시는 '뿌리다'라는 뜻의 일본어로 연예인 등 유명인사의 신상과 동정을 열거한 전단지를 의미하는 증권가 속어다.
이 단어는 각종 종목 정보, 회원사 동향에 대한 이야기를 짜깁기한 것에도 적용됐다. 주가가 실체 없이 소문으로도 움직이는 성질을 갖다보니 여의도 바닥에서 찌라시의 위력은 상당하다. 최근 개봉한 영화 소재로 활용될 정도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해도 악의적인 찌라시들이 난무했다. 개인 신상 비방은 물론 근거없는 기업정보가 난무하면서 투자자 피해로 연결되는 일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이 주가조작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인가받지 않은 정보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면서 뉴스를 취합하거나 연예인과 관련된 신변잡기 수준 외에는 상당 부분 자취를 감췄다.
헌데 최근들어 주가에 영향을 줄만한 음성적인 정보지가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고 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금융당국이 CJ E&M 실적 공시 위반과 관련해 애널리스트를 제재한 것이 계기가 됐다.
증권선물위원회는 지난달 CJ E&M 실적을 미리 공개한 기업공개(IR) 담당자와 이를 펀드매니저에 전달해 손실 회피와 부당 이득을 취하도록 한 증권사 소속 애널리스트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제재 이후 애널리스트의 활동 영역이 상당히 좁아졌다. 리포트를 쓰기 위해 필수적인 준비과정인 기업탐방 자체가 어려워졌다.
모 증권사 IT업종 애널리스트는 "가뜩이나 시장이 침체돼 상장사들이 그닥 반기는 분위기도 아니지만, CJ E&M 사태가 터지고 나서 증권 전문가들과의 접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많아졌다"며 "업계 구조조정 분위기로 경쟁력있는 보고서로 경영진과 투자자들에게 어필해야 하는 판에 답답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펀드매니저들을 대상으로 한 영업도 어려워졌다. CJ E&M 제재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지적을 의식한 펀드매니저들이 몸을 급격히 낮췄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들이 리서치센터를 강화하는 움직임도 이런 맥락이다.
문제는 정보 유통시장이 위축됨과 동시에 은밀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검증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을 온라인 상에서 유포하지 않지 않고 철저히 문서화해서 전달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만약에 있을 금융감독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조치다.
찌라시 유통의 플랫폼인 메신저도 음성화되는 모양새다. 실제로 최근 증권가에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가 적은 해외 메신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업체가 개발한 '텔레그램'이라는 메신저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는가 하면, 최근 일본 라쿠텐에 인수된 이스라엘 업체의 메신저의 경우 인기 앱 조회 순위에서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비대면 온라인 정보교류가 필수인 채권딜러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이처럼 금융당국 감시 수위가 높아지면서 긍정적인 기능을 하는 정보까지 유통이 안되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다른 한켠에선 유통망이 음성화되면서 근거없는 정보들이 난무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정보의 순기능은 살리고 역기능은 줄이는 스마트한 해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조태진 기자 tj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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