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기자]1993년 10월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는 292명이 목숨을 잃은 초대형 해난 사고였다.
시름에 젖은 국민을 분노로 몰아넣은 것은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할 백운두 선장이 조용히 현장을 빠져나와 잠적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소맷자락 하나 젖지 않은 채 구조 어선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는 언론보도까지 나왔다. 너무나 생생한 목격담이었다. 백 선장은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사람으로 몰렸고, 전국에 지명수배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백 선장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빗나간 '속보경쟁'은 사고수습에 온 힘을 바쳤던 선장을 전 국민의 돌팔매질 대상으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활성화된 시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빗나간 속보경쟁은 국민을 '이중 충격'에 몰아넣기 충분했다. 대형참사가 발생하면 언론은 보도를 경쟁적으로 쏟아낸다.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 나오면 확인 취재 없이 받아쓰기를 이어간다. 요즘처럼 실시간 뉴스경쟁이 벌어지는 때는 그 경쟁이 더 심하다.
문제는 확인도 되지 않은 주장과 내용이 보도를 통해 기정사실화된다는 점이다. 백 선장의 사례처럼 엉뚱한 사람을 천하의 파렴치한 인물로 몰아가기도 한다. '사람의 목숨'에 대한 오보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 때 피해자 가족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경기도교육청은 16일 오전 11시9분 출입기자들에게 휴대전화 메시지로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고 통보했다. 오전 11시25분에는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 해경 공식 발표'라는 2차 공지까지 했다.
언론은 경쟁적으로 속보를 전했다. TV 생방송을 전하는 화면에는 '전원 구조' 자막이 떴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학생들의 생사 소식을 기다렸던 학부모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서로를 위로했다. '전원 구조'만큼 더 기쁜 소식이 또 어디 있겠는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세월호 침몰 사고를 바라보던 국민 역시 언론보도를 보며 다행이라고 안심했다. 그러나 '전원 구조'는 완전 오보였다. 정부는 탑승자와 구조자, 실종자 수 등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언론은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언론 보도를 퍼 나르면서 오보는 널리 퍼졌다.
그러나 현실은 경악과 충격이었다. 부모들은 애타게 그리던 아이들을 만날 수 없었다. 시커먼 바다 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살아 있다"는 말만 철석같이 믿었던 가족들은 하늘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대형 참사 때 오보 경쟁은 심각한 흉기다. 사람의 마음속을 찢어놓는 회복불능의 한(恨)을 남기니 말이다.
류정민 기자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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