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방황하는 칼날'…히가시노 게이고 동명소설, 정재영 이성민 주연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중학생 딸이 죽었다. 동네 버려진 목욕탕에서 발견된 딸의 시신은 끔찍했다. 몸부림 끝에 손톱은 처참하게 으스러져있었고, 고통을 참느라 악물었던 이는 부러져있었다. 아빠 '상현'은 야근때문에 마트에 같이 가기로 한 약속을 못지킨 것이 못내 미안한 마음이었다. 시신의 얼굴을 확인해보라는 경찰의 재촉에 상현은 "내 딸일리가 없다"고 버럭 화를 낸다. 싸늘하게 굳어버린 시신 옆에서 상현은 망연자실한다. 왜, 도대체, 누가, 내 딸을 죽였는가.
영화 '방황하는 칼날'의 원작은 일본 추리소설의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소설이다. 다만 원작에서 작가가 일본 사법제도의 문제점에 초점을 맞췄다면, 영화에서는 피해자 아버지의 동선을 따라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를 툭툭 건드린다. 이정호 감독이 '베스트셀러' 이후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배우 정재영과 이성민이 각각 아버지와 형사 역할을 맡아 연기했다.
'상현'은 익명의 문자를 받고, 범인의 집을 찾아간다. 그 곳에서 딸이 집단 성폭행을 당하며 죽어가는 동영상을 보게 된 상현은 우발적으로 범인 중 한 소년을 살해한다. 그리고 소년의 휴대전화로 또 다른 가해자 '두식'의 위치를 찾아내, 그가 숨어있는 강원도로 향한다. 사건을 담당하던 형사 '억관'은 순식간에 피해자에서 살인사건 용의자가 된 '상현'을 추적하게 된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생의 목적을 잃은 상현의 멍한, 그리고 분노에 찬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영화는 묻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방황하는 칼날'이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딸을 잃은 아버지의 사적복수는 정당한 것인가? 갈수록 악랄해지는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정호 감독은 "이런 사건들을 뉴스에서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법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고 하면서도, 감정적으로는 사적 복수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지 않나. 그 딜레마를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달, 한 아버지가 딸이 성폭행 당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10대 남성을 흉기로 살해하고 자수한 실제 사건이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이자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라고는 하지만 영화는 아무 죄의식 없는 10대들의 태도, 피해자 가족들의 애끊는 마음, 무기력한 경찰들의 태도 등을 통해 심정적으로는 '상현'의 편을 들어준다.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칼날'은 법과 정의를 상징한다. "법은 이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보호해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그 아이들이 앞으로 제 딸 수진이를 기억이나 할까요?"라고 상현은 울부짖고, 형사 억관은 "17년 동안 피해자 가족에게 '참으라'는 말만 했다"며 무기력해한다.
하얀 눈밭 위를 상처투성이의 남성이 몸집만한 골프가방을 질질 끌고 힘겹게 걸어가는 그 장면, 이 장면 하나를 염두해 두고 감독은 마지막 장면부터 먼저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자식 잃은 부모에게 남은 인생이란 없다"는 대사처럼 영화의 결말은 모범적인 예상답안을 확실히 비켜가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 10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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