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발칙한 도전
[아시아경제 이윤주 기자]선거철이면 일부 어른들이 '정치 싸움판' 한가운데 던져놓으려 하는 학생인권조례는 애초에 시민사회단체의 주민발의로 만들어졌다. 이 대열에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있었다. '어린것들이 발칙하다'는 언짢은 시선 속에서 '우리 인권은 우리가 찾는다'는 생각 하나로 조례의 문구를 수백번 다듬었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귀찮게 한다'는 핀잔 속에서 사방팔방 발로 뛰어 서명을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주민발의 역사상 가장 많은 유효서명 10만명으로 조례를 통과시켰다. 이들은 '기특한' 일을 하고 칭찬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권을 남에게 보장해달라고 하는 대신, 스스로 움직일 뿐이다.
◆"학생은 학생답게"
지난달 신학기가 시작될 무렵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학생은 학생답게'라는 제목의 녹색 포스터가 나돌았다. '학생은 학생답게 자유로운 머리를 합시다' '학생은 학생답게 개성 있는 복장을 합시다' '학생은 학생답게 잘 쉽시다' '학생은 학생답게 체벌·폭력을 거부합시다' '학생은 학생답게 학교 규칙을 잘 바꿉시다' 등 5개의 조항(?)으로 이뤄진 포스터다. 아수나로 서울지역 활동가 따이루(21)씨는 이 포스터가 일으킨 반향에 대해 "3월 신학기가 시작되면 이른바 '군기'를 잡아야 1년이 무탈하다고 생각하는 일부 학교의 모습을 풍자하려는 의도였다"고 설명했다.
따이루와 함께 서울지역에서 활동하는 위영서(18)씨는 "학생을 '통제할 대상'으로 보는 시선이 청소년의 상상력 자체를 봉쇄하고 나이에 따른 편견을 강화시킨다"고 말했다. 이들은 "우리가 충분히 성숙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게 아니다"고 전제한 뒤 "단순히 나이를 잣대로 누가 누구의 성숙함을 판단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법적 성년으로 인정받는 해의 1월1일 동이 트면 '성숙한 인간'이라는 완장이라도 나눠 주는 건가요?(웃음)" 성숙하든 미성숙하든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장받는 데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는 게 아수나로 활동의 요체다.
◆'통제'를 학습하는 10대
'교복'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인권단체들은 두발의 자유를 넘어 복장의 자유를 주장하지만 현장에서는 막상 '교복 자율화'를 원하는 학생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사복에 돈을 들이고 옷차림에 신경 쓰기 싫어서다. 아수나로는 이 문제에서도 현상의 이면을 짚는다. 따이루는 "교복 자율화 얘기만 나오면 빈부격차, 위화감 운운하는데 사실 올바른 교육이라면 사람을 복장으로 평가하는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할 것"이라며 "교복을 입혀 다 똑같아 보이면 위화감이 실제로 사라지는가. 학부모의 등골을 휘게 한다고 '등골브레이커'라 불렸던 패딩은 그럼 왜 등장했을까. 차이를 덮어 가리는 게 우선이 아니라 차이가 있으면 그걸 해소하는 방식을 가르쳐야 하는 게 교육"이라고 강조했다.
영서씨는 "동복·하복·춘추복을 나눠 추위나 더위에 대한 개인차에 상관없이 '몇 월 며칠부터 재킷을 입어라, 벗어라' 하는 자체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청소년 시절 '복장'을 감시받는 일상에 익숙해지면 학생 신분을 벗어나서도 '나의 옷차림을 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기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어리다고 놀리지 말아요"
아무리 '대의(大義)'라는 명분이 있어도 사회적 논의나 법률적 절차 없이는 결코 밀어붙일 수 없는 일들이 '학생'이라는 범주에서는 쉽게 강제되는 경우가 있다. 셧다운제(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심야시간 인터넷게임 제공을 제한하는 제도)도 그중 하나다. 따이루는 "'과몰입'이나 '중독'을 대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저급한 방법이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통제에 길들여지면 스스로 절제할 수 있는 기회조차 차단된다"고 말했다. 영서씨는 "알코올 중독을 예로 들어보자"고 했다. "알코올 중독이 사회문제로 부각되면 각계에서 다양한 접근을 시도하죠. 성인에게 술을 '셧다운'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이게 호르몬의 문제인지, 사회경제적 원인이 있는지 연구하고 정책을 수립합니다. 청소년에게는 그만큼의 '품'을 들이지 않아요. 일단 막고 보는 거죠."
◆'요즘것들' 때문에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
매를 들어 반항하는 걸까, 반항하기에 매를 드는 걸까.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봤다. 따이루는 "체벌을 포함한 억압과 '면학 분위기'에 공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왜 그럴까?'를 생각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학교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왜 싫어할까'를 생각해야 하고, 수업을 거부한다면 '왜 거부할까'를 생각해야겠죠. '말 안 듣는 현상'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본질에 접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30~40명을 한 공간에 몰아놓고 원하지도 않는 수업을 온종일 듣도록 하는 게 과연 10대에게만 견디기 어려운 일일까요?" 따이루의 일침은 매서웠다.
"시스템을 성찰하고 개혁하는 방식은 당장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려우므로 흔히 '너무 이상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죠. 반면에 누군가를 '권위'로 통제하는 일은 그보다 훨씬 쉽습니다. 이렇게 쉬운 쪽을 선택하는 학교 구조가 고착화되니 본질적인 문제는 가려지고 교사-학생의 대립만 표면화되는 겁니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성토할 에너지를 부조리한 학교 구조 개선을 촉구하는 데 쓴다면, 학생들과 매일같이 전쟁하지 않고도 더 큰 변화를, 하루라도 빨리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이윤주 기자 sayyunju@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