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중국의 추상미술 화가들이 한국을 방문해 전시를 열었다. 최근 국내 미술관, 갤러리에서 중국 현대미술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지만 , 추상미술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눈길을 끈다. 40~50대 남성들로 구성된 참여 작가들은 우리나라로 치면 이우환, 박서보 처럼 단색화나 추상화로 중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화가들이다.
'평면과 심도'라는 제목의 이번 미술전은 27일부터 오는 5월 24일까지 서울 서초동 부띠끄모나코 빌딩 지하 '더 페이지 갤러리' 전시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8명의 작가들이 내놓은 30여점의 작품들이 비치됐다.
이번 전시는 미술 평론가와 디렉터로 활동 중인 펑펑 중국 북경대학 교수가 기획했다. 그는 지난 2012년 베니스 비엔날레 중국관 전시를 기획했으며, 최근엔 중국 신장 우루무치에서 열릴 비엔날레를 기획하고 있다.
펑펑 교수는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중국 예술가들 중 다수가 서방의 교육과 문화에 노출돼 있지만 그들의 작품은 선명한 중국색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며 "일상생활 속에서 깊은 사고를 거쳐 회화의 심도(深度,깊이)를 찾아낸다는 것이 공통적이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유럽과 미국에서 펼쳐진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중국에서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대신 생활과 세속에 밀접한 현실주의를 내포한 추상작품들이 중국식 추상미술을 대표하게 됐다. 서구의 추상화가 캔버스 표면 자체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펑펑 교수는 "회화가 서방에서 이미 사형판결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지만 중국은 여전히 많은 화가들이 회화에 심취해 있다"며 "서구의 회화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성찰의 이면을 중국 회화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30여점의 작품이 출품된 전시장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멍루딩의 추상화는 핵분열 혹은 우주폭발처럼 느껴진다.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감정을 표출한 것으로도 이해되는 이 작품은 급변하는 중국 사회 사람들의 심리상태를 투영한 것이다. 왕지에 작가는 붉은빛이 전체적으로 감도는 캔버스 위에 움직이는 사람의 의복만 그대로 남겨뒀다. 비어 있는 공간 속에 존재하는 군상은 중국 현대인의 공허함을 상징한다. "자신의 생각과 소신을 잃어버린 중국의 젊은 세대를 표현하고 있다"는 설명은 어쩌면 한국의 상황과도 엇비슷해 보인다.
더 페이지 갤러리 관계자는 "여전히 국내에선 쩡판즈, 위에민준 등 중국 현대미술계의 '4대천왕'이라고 불리는 그룹이나 구상적인 그림들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동안 소개가 되지 않았을 뿐"이라며 "서양의 추상미술을 반복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중국의 추상미술은 새로운 사유와 방법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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