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이 시 '거대한 뿌리'에서 "내가 요즘 연애를 하고 있는 상대"라고 한 이사벨 버드 비숍 여사는 1893년 조선을 방문한 영국왕립지리협회 회원이었다. 시인은 그러나 조선 말의 한양 풍경을 묘사하면서 세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기이한 관습을 가진 나라라고 한 비숍 여사에 대해 다른 나라, 다른 문화에 대해 함부로 얘기하지 말라고 나무라면서 단호히 선언한다. "전통은 아무리 더러운 전통이라도 좋다"고. 편견이 섞인 서구인의 시선은 시인으로부터 방망이질을 당했지만 비숍 여사가 지리학자다운 관찰력으로 조선 사회를 통찰한 바가 있으니 그건 "조선에서 모든 사람의 마음은 서울에 있다"고 한 것이다.
외국인에 의한 한국사회 비평서로는 전례 없는 명저라는 평가를 받는 '소용돌이의 한국정치'에서 그레고리 헨더슨이 지적한 것도 그와 다르지 않다."한국은 현대문명이 상정할 수 있는 가장 중앙집권화된 나라다."
조선 말과 현대로 시대는 달랐지만 두 이방인에게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압도적인 서울 집중 현상이었던 듯하다. 그리고 이 같은 한국 사회의 가장 특징적인 면모 중의 하나는 지금 전국민의 20%가 몰려 있는 서울의 인구에 집약돼 있다. 나라의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할 것인데, 사실 정치경제적 기능은 그보다 몇 배나 더 될 것이다.
최근 서울의 인구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1000만명의 인구가 깨진 것에 대해 서울이 쇠퇴하고 있다고 개탄하는 이들이 적잖게 있는데, 그런 지적에는 인구가 늘면 발전이고 줄면 쇠퇴라고 보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그 같은 사고의 단순함을 세세히 지적하기보다 외국의 유수한 도시의 인구가 얼마인지만 얘기하고 싶다. 영국의 런던은 750만명, 파리는 '겨우' 220만명에 불과하다.
아무리 크고 많은 것을 좋아하는 세태라지만 뭐든 덩치만 크다고 해서 좋은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몸 전체의 균형과 비례다. 서울에는 '거대 인구'가 아니라 '적정 인구'가 필요하다. 그건 서울의 군살과 기름기가 다른 지역의 살과 피로써 얻어진 것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는 점과도 잇닿아 있다. 서울이 적정하게 발전하는 것, 그것은 다른 지역을 위한 수도로서의 책무이지만 결국은 서울 자신의 건강과 장수를 위한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라면, 서울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좀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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