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김관진 국방부장관이 자살한 K 병사의 조의금을 가로챈 사건과 관련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K 병사는 육군 모 부대 간부들이 군복무 중 가혹행위를 못 이겨 자살했다.
김 장관은 28일 이번 사건의 경위와 군 수사 당국의 수사 착수 등에 대한 보고를 받고 나서 이같이 지시했다고 국방부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
김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고위간부들은 이 사건에 대해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일이었다"면서 유가족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후속 조치에 전력을 쏟기로 했다.
이와 관련, 육군본부 중앙수사단은 2011년 12월 해당 병사가 근무했던 부대의 헌병대와 기무부대 간부, 여단장 등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육군의 한 고위 관계자는 "수사 결과에 따라 잘못이 드러난 관련자는 형사처벌을 포함해 엄정하게 징계할 것"이라며 "관련자들이 조의금을 유가족 몰래 멋대로 사용한 것이 확인되면 이를 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7일 "2011년 12월 경기도에 있는 모 사단에서 자살한 K일병(당시 20세)의 조의금 300여만원을 유족의 동의 없이 꺼내 헌병대와 기무반장에 격려비로 나눠준 여단장 등 관련자 3명을 징계하라고 육군참모총장에게 권고했다"고 밝혔다.
권익위에 따르면 K 일병은 지난 2011년 12월 부대 화장실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헌병대는 사망 원인을 우울증 악화에 따른 자살로 결론 내렸고 K 일병의 아버지는 조사결과를 믿고 시신을 부검하지 않은 채 장례를 치렀다.
1년여 뒤 K 일병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복무한 병사의 글을 우연히 읽었다. '나는 살인을 방관했고, 나 또한 살인자다'라는 제목의 글에는 당시 부대 간부들이 K 일병의 신상 관리를 소홀히 했고, 사고 발생 후 입막음을 강요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병사는 헌병대 수사결과도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K 일병의 아버지는 지난해 4월 '아들이 부대 내 가혹행위에 못 이겨 자살했다'며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통해 아들의 죽음이 가혹행위와 관리 소홀 때문이라는 점도 인정받았다. 이 과정에서 조의금이 유족에게 전달되지 않았는데도 이 돈을 유족에게 줬다는 군 내부 문서가 발견됐다. K 일병 아버지는 조의금이 아들의 장례비용으로 모두 쓰인 줄로 알고 있었다.
권익위 조사결과 K 일병 장례식 비용은 별도 국가 예산으로 집행됐다. 당시 여단장이었던 A 대령은 조의금 중 일부를 헌병대(20만원), 기무반장(10만원) 등에게 지급했다. 60만원은 회식비로 지출하기도 했다. 방명록은 소각했고 정산기록은 사라졌다. 이 탓에 조의금의 전체 액수가 얼마인지, 나머지 금액을 어디에 사용했는지 확인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K 일병 죽음에 얽힌 배경도 밝혀졌다. K 일병은 손목에 자해를 시도하는 등 군 입대 직후부터 '복무 부적합' 징후를 보였으나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했다. 폭언과 잠을 재우지 않는 등 가혹행위를 당했다. K 일병은 군 병원 정신과에서 부작용 우려가 있는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정량 복용을 확인하지 않았다. K 일병은 이 약을 모아 음독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A 대령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고 인사 이동 뒤 현재 경기도내 다른 부대에서 근무 중이다. 현재 군당국은 일반사망(자살) 처리된 이 병사를 '순직'으로 변경되도록 재심의 절차를 신속히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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