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느 때보다 부쩍 많이 얘기되는 책들 중에서 아마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이 우리 사회의 고전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지만 특히 올해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목민심서'는 더욱 특수(特需)를 누리고 있는 듯하다. 책뿐만 아니다. 모범이 되는 지자체장을 선정해 포상하는 데 '목민대상'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비 지방관을 기르는 학교에 '목민학교', '목민포럼'이라는 이름을 내건다.
다산이 강진의 귀양지에서 학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을 보면서 비통한 심정으로 이 책을 쓴 건 벌써 200년 전의 일이지만, "다른 벼슬은 구해도 목민관만은 구해서는 안 된다"고 한 다산의 준열한 훈시는 여전히 감동적이고 새롭기에 '목민심서'에서 지방관의 도리를 배우고 따르려는 이들이 이처럼 많다는 건 반길 일이다. 다산이 말한 바른 몸가짐, 청렴한 마음과 자기 수양, 애민정신은 오늘에 되새겨 봐도 변하지 않는 불후의 덕목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목민심서에 대한 숭배와 예찬에 한 가지 드는 생각이 있다. 그건 다산이 만약 지금 다시 살아온다면 자신의 목민심서를 어떻게 고쳐 썼을까, 라는 것이다. '목민(牧民)'이라는 말은 가축을 기른다는 의미다. 회초리로 쳐서 소를 몬다는 본래의 뜻처럼 이 말에는 옛날의 '정교일치' 시대, 군주와 관리가 곧 백성의 교사였을 때의 정신이 담겨 있다.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을 다스리는 사람'으로, '몸을 수고롭게 하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다스림을 받는 사람'으로 나눴던 과거의 가치관이 배어 있다. 그러므로 공직자가 되려는 이들이 자신의 직분을 목민이라고 한다면 그 말은 이미 국민을 '계도'하려 하고, 국민 위의 우월한 이로 군림하려 하는 충동을 부추기는 점이 있는지 모른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시대에 살고 있다면 다산은 지방관, 혹은 공직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무어라고 당부했을까. 아마도 국민이 권력의 주인으로서의 자신의 몫을 찾도록 하는 데에 소임을 두라고 하지 않았을까. 시민이 진정한 주체로서의 시민이 되도록 조력하고 도우라고, 목민 대신 '조민(助民)' '원민(援民)'의 역할을 하라고 하지 않았을까. 목민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목민심서를 열심히 정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정독하고 나서는 그걸 넘어서야 할 듯하다. 그것이 아마도 진정으로 다산으로부터 배우는 길이 아닐까, 한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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