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김연아(24)는 산뜻하게 출발했다. 밤새 마음 졸이며 지켜본 팬들에게 완벽한 연기로 화답했다. 74.92점. 약간 인색한 점수지만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이하 쇼트) 1위를 지키기에는 충분했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을 때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다. 시니어 데뷔 무대인 2006~2007시즌부터 소치올림픽 전까지 모두 22차례 국제대회에 출전해 17차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에 올랐다.
이 가운데 프리스케이팅에서 역전당해 우승하지 못한 경우는 네 번 뿐이다. 데뷔 첫해였던 2006~2007 시즌의 일이다. 시즌 첫 그랑프리 시리즈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프로그램 1위에 올랐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4위로 처져 동메달에 그쳤다.
시니어 무대에 적응을 마친 뒤 역전 우승을 내준 경우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열린 2008~2009 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이 처음이다. 감기가 심해 체력이 떨어지고 국내 팬들의 관심이 지나치게 뜨거워 많은 부담을 안고 출전한 대회였다. 은메달을 땄지만 투혼이 빛났고, 많은 찬사가 따랐다.
김연아가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를 하고도 금메달을 놓친 마지막 대회는 2011년 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다.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 중 러츠 점프에서 실수를 해 65.91점에 그치면서 2위 안도 미키(일본)를 0.33점 차로 겨우 앞섰다. 프리스케이팅에서도 점프 실수가 나왔고, 결국 안도에게 역전당했다. 그 뒤로 김연아는 역전을 불허했다. 세 차례 국제대회, 두 차례 국내 종합선수권대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김연아는 국제대회에서 총 16차례 정상에 올랐다. 이 가운데 쇼트프로그램에서 1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1위를 차지하고 금메달을 목에 건 경우는 2006~2007시즌 그랑프리 파이널을 비롯해 세 번이다. 시니어 무대에 데뷔한 뒤 메달 없이 물러선 적은 한번도 없다.
역대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에서 쇼트 1위를 한 선수가 금메달을 딴 비율은 33.3%다. 쇼트와 프리스케이팅(이하 프리) 점수 합산제가 처음 도입된 1992년 알베르빌 대회 이후 여섯 차례 올림픽에서 두 차례 쇼트 1위 선수가 우승했다. 1992년 크리스티 야마구치(43·미국)와 2010년 밴쿠버 대회 김연아다. 두 선수는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퍼펙트 골드'를 쐈다.
1992년 당시에는 석차점수가 적용됐다. 야마구치는 1.5점으로 4.5점에 그친 이토 미도리(45·일본)를 제쳤다. '석차점수'는 쇼트와 프리에 부여된 석차계수(쇼트 0.5점, 프리 1.0점)에 해당종목 순위를 곱한 숫자로, 석차점수의 합이 적은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석차점수는 프리 순위가 전체 성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 때문에 2002년 솔트레이크 대회를 끝으로 폐지됐다.
밴쿠버에서 228.56점이라는 역대 최고점수를 달성한 김연아도 205.50점에 그친 아사다 마오(24·일본)를 20점 이상 따돌리고 우승했다.
나머지 대회에서는 쇼트 2~3위 선수가 프리에서 분전하며 우승한 사례가 많았다. 1994년 릴레함메르의 옥사나 바이울(37·우크라이나)과 1998년 나가노의 타라 리핀스키(32·미국)는 쇼트에서 2위를 기록한 뒤 프리에서 경기를 뒤집었다. 2006년 토리노에서 아라카와 시즈카(33·일본)는 66.02로 쇼트 3위에 그쳤지만 프리에서 125.32를 기록하며 사샤 코헨(30·미국)을 이겼다. 은메달을 딴 코헨의 프리 점수가 116.63점에 그친 걸 보면 시즈카의 프리 연기는 한 차원 수준이 높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1994년 릴레함메르의 낸시 케리건(45·미국)과 나가노의 미셸 콴(34·미국), 토리노의 코헨은 쇼트에서 1위에 오르고도 우승을 놓친 비운의 스타로 남았다.
2002년 솔트레이크에선 사라 휴즈(29·미국)가 쇼트에서 4위를 기록하고도 역전우승에 성공하기도 했다. 쇼트 4위로 석차점수 2.0점을 받은 휴즈는 프리에서 1위에 오르며 합계 3.0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하지만 쇼트 2위의 이리나 슬루츠카야(36·러시아)가 프리 마지막 점프에서 휘청이며 2위로 내려 앉아 합계점수에서 동률을 이뤘다. 금메달은 규정에 따라 프리에서 더 높은 순위에 오른 휴즈에게 돌아갔고, 슬루츠카야는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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