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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의 해, 말(言)의 해]새로운 말의 시대 'SNS'…그들만의 소통인가?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2분 33초

초등생 10명 중 8명 '줄임말' 대화...스마트폰 통해 신조어 확산

[말(馬)의 해, 말(言)의 해]새로운 말의 시대 'SNS'…그들만의 소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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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 인터넷이 발달하고 스마트폰이 확산되면서 말의 풍경도 달라졌다. 이제는 통화를 하거나 직접 얼굴을 맞대며 이야기를 하는 대신 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더 많은 말들을 주고받게 됐다. 휴대폰의 작은 액정 사이즈에 맞게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인 축약어가 젊은층들 사이에 유행하게 됐고, 그들만의 말은 세대 간 소통의 단절을 가속화시켰다. 양방향 소통의 장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이 수많은 네트워크들은 실체없는 괴담과 댓글들을 양산하면서 SNS 피로감만 낳았다. 말은 한없이 가벼워지고, 속도는 더욱 빨라진 시대, 우리는 어떻게 소통하고 있을까.

◆'버카충', '근자감'...줄일 수 있을 때까지 줄인다


"솔까말 내 친구는 오덕인데, 근자감 하나는 쩐다."
"어제 버카충해서 돈이 없다."

앞의 예처럼 요즘 젊은층들 사이에서는 웬만한 말들은 줄여서 사용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솔까말'은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근자감'은 '근거 없는 자신감', '버카충'은 '버스카드 충전'의 줄임말이다. '오덕'은 한 가지 일에 파고드는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표현한 말이다. 이 밖에 '갑톡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열폭(열등감 폭발)' '쓸고퀄(쓸데없이 고(高) 퀄리티)' 등 정체불명의 줄임말이 범람하고 있다. 한 학습 포털커뮤니티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초등학생 10명 중 8명은 줄임말 등 신조어를 쓰지 않고는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답했으며, 2명 중 1명은 자신의 언어습관에 가장 영향을 미친 것으로 '스마트폰'을 꼽았다.


이 같은 말들이 한글을 파괴한다는 지적 외에도 세대 간 소통을 막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예전에도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 '명퇴(명예퇴직)'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있으면 도둑)' 등의 말들이 유행을 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줄임말들은 스마트폰과 인터넷이라는 날개를 달아 그 양과 속도에서 압도적이다. 경기도 분당에 사는 주부 이희영(45) 씨는 "딸이 친구 '생선'을 사야한다고 해서 먹는 생선인 줄 알았더니 '생일선물'을 줄여서 말한 것이었다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세대차이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젊은이들이 줄임말을 많이 쓰는 배경에는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경제논리'도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영일 공공소통전략연구소 대표는 "어른들은 젊은층들의 말을 듣고 '요즘 애들은 이상해'라고 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어른들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젊은층들이 언어에도 그만큼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을 체감하고, 이것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것이 '줄임말'로 나타났다. 통화를 하지 않고 문자를 이용하고, 또 문자보다는 카카오톡을 선호하는 것은 그만큼 비용이 적게 들어가기 때문이고, 여기에 맞게 말도 바뀌게 됐다"고 설명했다. 무조건 젊은층들의 말에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 소문·괴담·루머의 진원지 SNS..일방적 소통의 장?


처음 SNS 등이 도입됐을 때만 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정보공유, 집단 지성, 쌍방향 소통 등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국내 SNS 이용자만 2000만명이 넘은 지금, 시간이 지날수록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은 왜일까. 지난해 잡코리아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63%가 'SNS에 피로감 혹은 부담감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또 최근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전체 75.8%가 SNS를 통해 지인들과 소통하지만, 이 중 절반 이상(56.8%)은 "진정한 관계 형성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피로감은 대부분 SNS가 본연의 기능을 살리지 못하고 일방적인 정보 확산의 수단으로 사용된 데 따른다. 출처도 불분명한 각종 유언비어와 괴담이 SNS의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됐다. 2012년 우리에게 '미스터 빈'으로 잘 알려진 영국 배우 로완 앳킨슨이 한 남성이 장난으로 올린 트위터로 인해 '사망설'에 시달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당시 이 '거짓' 트위터가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진 시간은 불과 2시간. 심지어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디피아는 앳킨슨의 프로필을 '사망날짜 2012년 2월26일'로 변경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지난해 각종 민영화 괴담이 인터넷상을 뜨겁게 달군 데 이어 최근에는 '일본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잡힌 명태가 러시아산으로 둔갑해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다'는 '러시아산 명태 괴담'과 '달걀만 먹어도 조류인플루엔자(AI)에 걸린다'는 AI괴담 등이 확산되고 있다. '괴담'은 '불통'의 다른 이름이다. 사실이 아닌 루머가 네트워크를 통해 일방통행하는 동안에도 이런 오해를 풀려는 정부나 관계자들의 명확한 설명이나 적극적인 노력이 부족했던 점도 사태를 악화시킨 데 한몫을 했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대학생 10명 중 7명은 'SNS 이슈가 마녀사냥 등 부정적 측면이 더 크다'고 답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촉발된 민주화 시위가 SNS를 통해 점화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2011년 미국 전역으로 확산됐던 반월가 시위 역시 SNS가 도화선이 됐다. 근본적인 문제는 SNS가 아니라 이를 이용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디지털 시대의 필수적인 소통 수단인 SNS의 순기능을 적극 살리면서, 역기능은 합리적인 방식으로 해소하는 방법으로 새로운 말의 시대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누리망에서 펄럭거리는 이 새로운 형태소들이 표준어 형태소와 누리망 바깥에서 힘있게 싸우기는 어려울 것이다. 누리망 언어는 근본적으로 하위문화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회방언들은 표준어의 압제에서 벗어나고 싶은 누리꾼들에게 자유의 공기를 실어 나르며, 그들끼리의 연대를 강화하며, 누리망 어느 곳에선가 꽤 오랜 시간 꿈지럭거릴 것이다."(고종석, 말들의 풍경 중에서)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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