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세계 최고 효율 슈퍼컴퓨터 비결은 '잠수식 냉각', 전기 절반 덜 써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다들 더 크고 더 빠른 슈퍼컴퓨터를 원했다. 하지만 그건 20~30년 전 얘기다. 이제는 자동차로 말하면 '고출력 차량'에서 '패밀리 세단'으로 관심이 옮겨졌다."
시장조사회사 IDC의 스티브 콘웨이 애널리스트는 슈퍼컴퓨터 경쟁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벌어지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눈길을 끄는 세계 친환경 슈퍼컴퓨터 순위가 지난해 11월 발표됐다.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열린 슈퍼컴퓨터(SC)13 콘퍼런스에서 일본 도쿄(東京)공업대학 슈퍼컴퓨터 쓰바메KFC가 에너지효율 1위에 올랐다.
연산능력에서는 중국 톈허(天河)2호가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톈허2호는 같은 전력을 쓸 때 처리하는 연산이 쓰바메KFC의 절반에 그친다. 같은 연산을 수행하는 데에는 톈허2호가 쓰바메KFC보다 전력을 2배 더 쓴다는 얘기다.
◆日 슈퍼컴 에너지효율 최고=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슈퍼컴퓨터 분야에서 중국은 연산능력 키우기에 주력하는 반면 일본은 에너지 효율로 앞서가고 있다며 친환경 슈퍼컴퓨터 기술 흐름을 소개했다.
쓰바메KFC는 하드드라이브 등을 제외한 부분이 광유(鑛油) 탱크에 들어 있다. 슈퍼컴퓨터의 열을 식히기 위해서다. 광유는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값싼 부산물이다. 광유는 물과 달리 전기를 통하지 않아 슈퍼컴퓨터 작동에 장애를 일으키지 않는다.
슈퍼컴퓨터를 냉각하는 기존 기술은 '공랭식'이다. 에어컨 바람을 쐬어주는 것이다. 물 같은 액체를 관에 주입해 슈퍼컴퓨터 주위에 돌려주는 '수냉식'도 있지만 일부에만 쓰인다. 도쿄공업대학은 슈퍼컴퓨터를 거의 통째로 액체에 담가버린 것이다. 이를테면 '잠수식'이다.
◆슈퍼컴은 전기 먹는 하마= 도쿄공업대학이 발상을 뒤집어 실행에 옮긴 것은 전기요금 절감이 절박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일본 전기요금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원전 가동이 중지되면서 더 올랐다. 일본 전기요금은 2012년 현재 킬로와트시(㎾h)당 241원으로 우리나라 99원의 2.4배나 된다.
슈퍼컴퓨터는 연산능력도 대단하지만 전력 사용량도 엄청나다. 슈퍼컴퓨터 한 대가 연간 수천만달러어치 전기를 소모한다. 새로운 냉각은 기존 기술에 비해 전기요금이 수백만달러 덜 든다.
도쿄공업대학의 쓰바메KFC가 채택한 광유 냉각기술은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그린 레볼루션 쿨링이 개발했다. 영국 신생회사 아이서톱(Iceotope)은 액체 불소수지인 노벡123에 슈퍼컴퓨터를 담근다. 이전 불소 용액은 오존층을 파괴하는 단점이 있었지만 노벡123은 오존층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미국 환경보호청(EPA)의 휘발성유기화합물로도 지정되지 않았다. 3M에서 개발한 노벡123은 이전까지 정교한 소방장치에 쓰였다.
◆용액 두 가지 기술= 피터 홉튼 아이서톱 최고경영자(CEO)는 노벡123을 쓰면 에너지요금ㆍ설비투자비용을 각각 절반으로 감축할 수 있다고 NYT에 말했다. 잠수식 냉각은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아 설비투자에 돈이 덜 든다.
홉튼은 노벡123이 광유보다 냉각 효과를 더 잘 낸다고 말한다. 크리스티안 베스트 그린 레볼루션 CEO는는 광유도 효과가 비슷한데 훨씬 저렴하다고 강조한다. 광유 가격은 갤런당 10달러 미만이지만 노벡123은 70달러 수준이다.
광유 방식은 미국 국방부를 비롯해 몇 군데 데이터센터에서 가동 중이다. 인텔은 1년 동안 연구해 서버 성능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없었다는 결론을 냈다. 아이서톱 기술은 영국ㆍ폴란드 대학 슈퍼컴퓨터에 적용됐다. 아이서톱은 지난 1월 600만파운드(약 106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데이터센터에도 활용 가능= 미국 국방부처럼 잠수식 냉각기술을 슈퍼컴퓨터뿐 아니라 데이터센터에도 적용할 수 있다. 이 기술이 데이터센터에 보급되면 관련 시장 규모와 파급 효과가 훨씬 더 커진다. 새 냉각기술을 활용하면 연간 수억달러에 달하는 데이터센터의 전기요금이 수천만달러 절약된다. 아이서톱에 따르면 미국에서 데이터센터 냉각에 쓰는 전기요금이 연간 60억달러에 이른다. 신기술로 전기요금을 연간 몇억달러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경제활동과 관련한 정보가 방대한 규모로 오가고 빅데이터로 축적되며 분석되는 흐름 속에서 데이터센터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신기술의 잠재 시장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데이터센터를 해외로 이전할 유인도 줄어든다. 소프트뱅크가 데이터센터를 한국에 세운 데 이어 마이크로소프트(MS)와 페이스북도 한국 데이터센터를 검토하는 가운데 새로운 대안으로 잠수식 냉각기술이 떠오르고 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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