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유진 기자] "쪼큼 더 깎아효. 쿠만원에 주세요."
15일 오후 3시께 서울 용산 전자상가는 외국인들의 독무대였다. 휴대폰 매장마다 삼삼오오 한국말로 가격을 흥정하며 설전을 벌이느라 북새통을 연출했다. ‘용산폰’ 구매 행렬이었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방글라데시, 필리핀, 남아공, 미국 등 국적은 다양했다. 외국인 근로자나 유학생 신분인 이들은 한국말에 능숙했다. 외국 손님들을 환영하는 듯 매장 내 유리 진열대에는 각국 지폐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때마침 나진상가 매장에 30대 후반의 손님 4명이 방문했다. 핑크색의 LG 옵티머스 뷰2 스마트폰을 구경하던 그들은 마음에 들었는지 주인에게 "5000원만 깎아 달라"고 흥정을 시도했다. 매장 주인은 "9만5000원에서 한푼도 덜 받을 수 없다"며 단호하게 손사래를 쳤다. 팽팽한 기싸움 끝에 손님들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주섬주섬 지폐 9만5000원을 건넸다. 비즈니스 여행차 한국을 찾았다는 그들은 고국에 있는 아내에게 줄 선물을 사러 왔다고 귀띔했다. 매장 주인은 "2년 전 출시된 중고 스마트폰을 대당 8만원에서 20만원을 사간다"고 설명했다.
용산 매장에서 외국인들에게 가장 잘 팔리는 중고폰은 갤럭시S2, S3, 노트2나, LG 옵티머스 뷰2 등이다. 갤럭시 노트2는 20만원선에 판매된다. 포장 박스까지 있는 갤럭시 S4는 55만원에 거래된다. 애플 아이폰보다 인기가 높다. 외국에서도 유명한 갤럭시 모델을 '본토에서 오리지널로 살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이라고 매장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또 다른 외국인은 "방글라데시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산 가짜가 많아 삼성의 나라, 한국에서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근처 매장으로 들어가자 외국인 주인이 외국인 손님에게 아이폰을 보여주고 있었다. 매장 주인인 김 압둘라씨는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한국 국적을 가졌다. 4년 전 인근 상가에서 조립PC 장사를 하다가 벌이가 신통치 않자 최근 중고 스마트폰 매장을 오픈했다. 외국인 직원도 언어별로 2명이나 뒀다.
매장을 찾는 손님은 하루에 20여명. 온라인 사이트도 있다. 전자상거래가 활발한 한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이다. 김 압둘라 씨는 "4년 전 옆동에서 조립PC 판매를 했는데 그때보다 매출이 좋다"며 웃어보였다. 옆에서 신상품을 구경하던 캄보디아 출신의 한국과학기술대학교 학생 A씨는 "용산은 스마트폰을 싼 값에 살 수 있는 매장으로 유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고 거들었다. 외국인들은 외국인등록증만 있으면 원하는 이동통신사를 통해 신분 확인 후 휴대폰 개통이 가능하다.
용산 매장에서는 중고폰도 매입한다. 새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고객의 중고폰을 매입해 상태가 좋은 것은 되팔고 나머지는 중국으로 수출한다. B 매장 주인은 "용산 상권이 너무 죽어 외국인을 제외하고는 손님이 뜸하다"면서도 "한국산 스마트폰에 대한 외국인들의 인기가 용산을 부활시킬 수 있으면 좋겠다"고 힘줘 말했다.
조유진 기자 tin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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