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KBS는 2003년 9월 노사 합의로 '윤리강령'을 제정했다. 구성원 개인이 지켜야 할 윤리지침을 명문화한 이 윤리강령은 KBS가 '한국을 대표하는 공영방송'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모든 취재ㆍ보도ㆍ제작의 과정에서 다른 언론인보다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스스로를 단도리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현재, 이 윤리강령이 도마 위에 올랐다. KBS '뉴스9' 앵커를 맡았던 민경욱 문화부장이 5일 청와대 신임 대변인으로 임명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윤리강령 1조3항에는 'TV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진행자는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라고 적시해놓고 있지만, 새 신임 대변인은 9시 뉴스 앵커에서 물러난 지 고작 3개월 만에 청와대에 발을 들여놓았다. 내정되기 바로 하루 전까지도 KBS 9시 뉴스에 출연해 이번 '깜짝인사'의 효과를 높이기까지 했다.
하루아침에 국민의 '입'에서 대통령의 '입'으로 변신한 새 대변인을 지켜보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공영방송, 특히 뉴스의 공정성과 신뢰성 부문이다. 이번 대변인 내정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 견제의 역할을 해야 하는 언론이 권력과 밀착하는 것을 권장이라도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낳고 있다. "MB정부에서 '땡박뉴스'를 하는 것도 모자라 이번 정부 들어서도 '대통령 해바라기 방송'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KBS내부의 반발도 이 같은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언론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KBS는 신뢰도 부문에서 2010년 1위에서 2012년 4위, 2013년은 5위로 추락한 상태다.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KBS의 반응이다. 내외부의 지적에 대해 KBS는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이므로 '정치활동' 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국정철학과 입장을 대변하고 홍보하는 대변인의 일이 정치활동이 아니라는 데 누가 동의할 수 있을까. 수신료 인상을 요구하기 전에 자기 자신부터 돌아봐야 할 한국 공영방송의 현실이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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