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양극화에 쫓긴 이들의 도피처를 해부하다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동네 골목골목마다 이정표처럼 들어서있는 편의점. 밤에도 환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이곳 편의점에는 없는 게 없다. 김밥, 라면, 과자, 음료수는 기본이고 현금인출기(ATM), 문구류, 도시락, 선물세트, 속옷, 휴대폰 충전, 소화제, 복권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천의 얼굴'을 가진 편의점은 주변 상업시설, 문화공간 등을 하나하나 흡수 통일하며 만능 복합 생활 거점으로 진화하고 있다. 신간 '편의점 사회학'은 편의점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주의, 합리주의, 세계화를 읽어낸다.
편의점이 국내에 처음 들어온 것은 25년 전인 198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세븐일레븐이 서울 송파구에 올림픽선수촌점을 열면서 '편의점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후 편의점은 그 '편의성'을 무기로 무한 확장해 현재(2012년 기준) 2만4599곳으로 늘었다. 편의점당 인구 수는 2075명으로, 편의점 최초 발상지 미국은 물론이고 편의점 최대 발흥지인 일본과 대만을 제치고 인구 대비 편의점 수가 가장 많은 나라가 됐다. 2007년 마라도, 2008년 울릉도, 2010년 백령도에도 편의점이 들어섰으며, 심지어 개성공단에도 뿌리를 내렸다.
저자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대낮처럼 밝은 유리 벽 안에서 사람들이 컵라면과 삼각 김밥으로 한 끼 식사를 해결하고 현금을 인출하고 휴대폰을 충전하는" 이 편의점의 확산을 통해 "자본주의 소비 사회가 광범위하게 퍼지고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짚어낸다. 24시간 켜져 있는 편의점의 불빛은 우리를 소비로 이끄는 유도등 구실을 한다. 또 세계적 프랜차이즈 체인의 전형인 편의점은 세계화의 상징이자 지표기 때문에 고객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 자본주의 세계 체제에 동참하게 된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누가 편의점을 이용하느냐'에 대한 질문에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까지 읽어낼 수 있다.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편의점은 그 색다른 분위기로 인해 전문직 종사자들이 즐겨 이용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편의점이 확산되면서 이곳은 점차 '을'의 공간이 됐다. 우리나라의 편의점 이용 고객(2012년 기준)은 20대(31.5%)와 30대(26.0%)가 가장 많고, 직업별로는 회사원(49.5%)과 학생(29.3%)이 많다. 이들이 편의점에서 구매하는 상품은 식사대용 식품, 음료, 담배 순이다. "오늘날 한국의 편의점이 20, 30대 젊은이들이 식사를 간단히 해결한 다음 담배나 술 등으로 자신의 처지를 위로하는 장소로 정착돼 간다"는 분석이다.
이런 편의점을 대기업이 독식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아이러니다. 현재 우리나라 편의점 업계는 CU, 세븐일레븐, GS25 등 이른바 '빅3'가 전체 90%가 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그 주변 편의점에서 양초나 우산, 컵라면, 물 등을 쉽게 구매하지만, 그 편의점의 배후에는 거대 자본과 신자유주의, 양극화가 있다는 것은 미처 깨닫지 못한다.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가는 편의점이 개인의 삶,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한다.
(편의점 사회학 / 전상인 / 민음사 / 1만6000원)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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