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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신경림의 '누항요'

시계아이콘00분 47초 소요

이제 그만둘까 보다. 낯선 곳 헤매는 오랜 방황도./황홀하리라, 잊었던 옛 항구를 찾아가/발에 익은 거리와 골목을 느릿느릿 밟는다면./차가운 빗발이 흩뿌리며, 가로수와 전선을 울리면서./꽁치 꼼장어 타는 냄새 비릿한 목로에서는/낯익은 얼굴도 만나리, 귀에 익은 목소리도 들리리./(……)


신경림의 '누항요'


■ 누항(陋巷)은 누추한 골목을 의미하니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이며, 요(遙)는 그것이 멀리 있다는 뜻이니, 바로 가난했던 고향 옛마을을 가리킨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서울에 몰려든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실향민이다. 서울보다 가난한 도시에서 살다가 인생을 좀 업그레이드 시켜볼까 하고 이곳으로 올라왔다. 고향을 멀리멀리 떠나는 길을 우린 인생의 발전이라 믿었고 환경의 진화라고 믿었다. 천만명이 모두 삶을 향상시킨 도시라면 천국이라고 할 만하지 않은가. 그 도시에서 우린 정말 행복한가. 우린 정말 대단한 것을 찾아냈는가. 이 부글거리는 욕망의 또 다른 누항을 깨달은 지도 오래 되었건만 뭘 더 기대하며 여기에서 이토록 미적거리고 있는가. 행복이 있을 만한 새로운 곳을 찾아내는 일, 기쁨이 있을 만한 새로운 시간을 기다리는 일에 번번이 속아왔는데, 왜 우린 여기서 이 관성적인 질주를 멈추지 못하는가. 행복은 새로운 곳, 새로운 경험, 새로운 문명에 있지 않다는 것. 이 뼈아픈 각성이 신경림에게 누항요를 부르게 하는 것이다. 한 걸음 마음을 뒤로 물려, 돌아가자. 옛날의 낯익은 얼굴들과 순박한 이웃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서 가난하고 욕망없는 그 자리에 누워보자. 정말 그때는 아무런 의심도 실망도 없이, 고통도 외로움도 다 편한 헌옷처럼 누리지 않았던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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