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종일 기자][뷰앤비전]세상을 변화시키는 힘, 공유(共有)
고 재 득(성동구청장)
서울 성동구청 지하에는 ‘무지개 장난감 세상’이라는 공간이 있다. 개관한 지 벌써 10년이 돼 가는 이 곳엔 5000여 개 장난감과 2700여권 아동도서가 구비돼 있다. 아이들 장난감이 한 두 푼 하는 것도 아니고 연령별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 달라 때가 되면 바꿔줘야 하는 부모들에겐 장난감 구입이 부담스럽기만 한 데 이 곳에선 연회비 1만원만 내면 각종 장난감을 함께 이용할 수 있으니 엄마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한양대학교 탁구 동아리는 인근 사근동 주민센터 다목적실에서 동아리 활동을 한다. 동아리 활동이 없는 날엔 이 곳에서 스터디 모임이나 동창회가 열리기도 하고 주민 단체 회의도 진행된다. 탁자나 의자, 빔 프로젝터 이용은 무료다. 공공시설이다 보니 지속적, 안정적으로 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공공시설 중 일정 시간대 활용하지 않은 유휴공간을 개방하면서부터 주민들은 저렴한 사용료만 지불하면 편리한 시간대에 가까운 빈 공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성동구에만 성동구립도서관 등 18개 시설, 25개 공간이 개방됐다.
장난감을 함께 이용하고 노는 공간을 함께 쓰는 것을 한 단어로 설명한다면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공유(共有, Share)’가 아닐까 한다. 타임지가 ‘세상을 바꾸는 10대 아이디어’ 중 하나로 선정할 만큼 이제는 기존의 ‘소유 경제’를 넘어선 협력적 소비인 ‘공유경제’가 떠오르고 있다. 공유는 말 그대로 물건이나 공간, 나아가 재능, 시간, 정보 등 유·무형 자원들을 함께 나누고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시도 지난해 9월 공유도시를 선언했으며, 최근에는 직접 공유를 체험해볼 수 있는 ‘공유위크’를 여는 등 공유문화 확산을 위해 힘쓰고 있다.
서울시의 공유도시 선언 이후 우리 사회에는 점차 작지만 큰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면접을 앞 둔 청년 구직자들은 수십만원에 이르는 정장을 사지 않고 누군가의 옷장에 잠자고 있던 옷을 공유해 입는다. 여행객들은 값비싼 숙박료를 치르지 않고도 도시 민박을 통해 개인 주택의 남는 빈 방에서 묵을 수 있게 됐다. 차가 없어도 car sharing으로 언제든지 저렴한 가격에 시내를 오간다. 야간이나 낮 시간대 사용하지 않는 주차장을 서로 공유하여 골칫거리였던 주차문제도 해결해가고 있다.
이처럼 공유는 불필요한 생산과 소비를 줄일 수 있다는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무언가를 함께 나눔으로써 관계를 형성한다는데 더 큰 의의가 있다. 서두에 예를 든 장난감을 함께 이용하는 엄마들은 처음엔 장난감 구입비를 절약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과 육아 정보를 나누고 유대감을 나누는 끈이 된다는 점을 공유의 더 큰 이득으로 꼽는다.
사실 당장 내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단절된 도시에서 누군가와 물건이나 공간을 함께 쓴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공유를 실천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이용자 간의 ‘신뢰’이고 이것이 점차 쌓여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삭막했던 도시가 행복하고 따뜻한 공동체로 변화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릴 적 시골 마을에 살 땐 농번기가 되면 내 집, 네 집 할 것 없이 모두가 힘을 모아 서로의 일을 돕는 두레나 품앗이 문화가 있었다. 맛있는 음식을 다함께 나눠 먹는 정(情)이 넘쳤고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땐 망설임 없이 옆집 문을 두드렸다. 우리 사회에 공유의 뿌리가 튼튼히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당장 집안을 한 번 둘러보시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는 것이 분명이 있다. 책장에 다 읽은 책 한 권, 한 번 입고 옷장에 넣어둔 옷도 좋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재능도 좋다.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것이라면 그 가치는 무한대가 될 것이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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