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김관진 국방장관이 취임 3년째를 맞았다. 김 장관의 취임식은 2010년 12월4일 국방부 대강당에서 열렸으며 당시 김장관은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거치면서 흔들리던 군심(軍心)을 추스르기 위해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결코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김 장관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43번째 국방장관이다. 역대 장관 중에 재임기간이 가장 길었던 장관은 1963년 3월부터 1968년 2월까지 국방장관을 지낸 김성은 장관(15대)으로 4년11개월을 재임했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로 계산하면 김 장관이 가장 장수한 국방장관이며 유임된 장관의 첫 사례다.
이명박 정부 때 임명된 김 장관은 박근혜정부 들어 김병관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국방장관에 내정되면서 퇴임할 예정이었으나 김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낙마, 계속 국방장관 임무를 수행해 왔다.
김 장관은 북한에 대한 응징 의지를 피력할 때는 눈에 힘을 주고 강한 어조로 말해 '레이저 김'이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김 장관을 향해 '특등 호전광', '역도', '괴뢰패당 우두머리', '첫 벌초대상' 등의 원색적인 용어를 쓰면서 비난해 왔다.
김 장관의 강성 이미지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데 효과를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북한은 2010년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3년여 동안 무력 도발을 감행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인사잡음과 국방개혁에 한계가 있다는 오점도 남겼다. 지난 10월 장성 인사 때 장경욱 전 기무사령관의 경질을 계기로 군 인사 잡음이 불거진 것도 재임기간에 남긴 오점으로 꼽힌다.
또 취임 이후 군령권(작전·정보)과 군정권(인사·군수)을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한 상부지휘구조 개편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국회의 벽에 막혀 성과를 내지 못했고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사실상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여기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문제를 놓고도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는 비판도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을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고 강조하다가 지난 7월 우리나라가 미국에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연기가 필요하다는 쪽으로 말을 바꿨다는 지적이다.
특히 방위사업청의 핵심 기능을 국방부로 이관하는 국방획득체계 개선도 추진했지만 아직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양낙규 기자 if@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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