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금, 자녀장학금, 생리휴가, 조합원 전임, 일 미리 하고 쉬는 올려치기, 신문·휴대폰 보기…
[아시아경제 김민영 기자] 현대차그룹은 북미에 현대차, 기아차 공장을 비롯해 4개의 현대모비스 공장을 두고 있다.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있는 현대기아차 공장은 노조가 없지만 디트로이트와 오하이오에 있는 현대모비스 공장은 노조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 자동차 사업의 위기를 몰고 왔다는 비판을 받은 전미자동차노조(UAW) 소속이다. 본지 기자가 앨라배마와 디트로이트, 오하이오 공장을 둘러본 결과 강성으로 대변되는 UAW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순한 양이 돼 있었다. 위기 이후 달라진 UAW의 모습이다.
달라진 UAW의 모습은 한국과 대비된다. 한국에 있고 미국에 없는 복지수준, 그래도 그들은 생산성 향상을 위해 묵묵히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는 있는 개인 일 우선의 근무관행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회사가 우선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한국의 자동차 노조를 걱정했다. 현장에서 만난 UAW 관계자는 "한국 자동차 노조가 미국의 전철을 밟지 않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결국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는 경험에서 나온 걱정이다. 한국 자동차 노조도, 조합원도 이제는 격을 갖춰야 한다. 미국에 있고 한국에 없는 근무행태, 미국에 없고 한국에 있는 복지수준 등을 2회에 걸쳐 비교한다.
<미국에 없고 한국에 있는 것>
◆퇴직금, 자녀장학금, 생리휴가=현대모비스 미시간 공장에 근무하는 한 생산직 직원은 최근 93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튿날에도 출근했다. 그는 전날 관리직원에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했고, 관리직원은 당연히 그가 다음 날 출근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는 그러나 다음 날 출근해 일을 마친 뒤 할아버지 빈소를 찾았다. 장례휴가가 있지만 그는 사적인 일보다 근로를 우선시한 것이다. 우리 같으면 당연히 3일 이상을 쉬는 게 관례다.
미국 근로자의 경우 회사 일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개인적인 일의 경우 회사 일을 한 뒤에 한다. 일반적인 휴가는 물론 조퇴도 거의 없다. 앨라배마 공장 등의 경우 정규 휴가 외에 생리휴가 등의 별도 휴가가 없다. 필요하다면 정규 휴가 내에서 휴가를 쓴다.
이마저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불거진 자동차 산업위기로 휴가일수가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공장에 따라 다르지만 휴가일수가 50일이었다면 25일, 30일로 낮췄다. 물론 노조와 협의를 통해서다. 당시에는 임금도 10%가량 삭감했다. 위기 이후에는 거의 동결 수준이다. 노조는 이를 수용하고 있다.
이 밖에 상여금, 퇴직금, 경조금, 자녀장학금, 진료비, 휴가비, 귀향비, 장기근속포상, 선물비, 체육·동아리 활동지원을 비롯해 식사(간식포함), 장례용품 지원, 통근버스, 체육복 등 한국 공장에서 지원하는 복지도 미국에는 없다.
◆조합원 전임=현대모비스 디트로이트와 오하이오 공장 노동조합은 UAW 소속이다. UAW는 과도한 각종 복지 요구 등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위기를 몰고 온 주범으로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위기 이후 달라졌다. 노조 주도로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토론도 실시하고, 스스로 생산성 향상을 위한 방법을 논의하는 등 공생을 위한 합리적인 노조로 거듭났다.
한국의 현대차 노조가 매년 파업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딴 나라 얘기다. 회사 측과 갈등이 있을 때는 우선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려 한다. 1차 대화가 안 되면 2차도 대화, 3차도 대화다.
자동차 산업 위기 이후 노조의 세력도 약화됐다. 미국 노조는 조합비를 직원들에게 갹출한다. 우리가 노조의 요구에 따라 급여에서 일괄적으로 떼는 방식과 다르다. 산업 위기 이후 월급 봉투가 얇아지다 보니 노조 가입률도 50%가량으로 크게 줄었다.
근로를 하지 않는 노조 전임 간부도 없다.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간부들이 근무시간에는 생산라인에서 똑같이 일을 한다. 노조활동은 근무 이외 시간에 한다. 현대차의 경우 전임 간부가 100여명에 달한다.
◆올려치기=근로자들이 퇴근을 빨리 하거나 일을 빨리 해놓고 쉬기 위해 작업을 미리 해놓는 것을 근로자들 사이에 '올려치기'라고 부른다. 현대차 울산 공장 등에선 이미 관행화돼 있다. 점심시간이나 퇴근시간 20~30분 전이면 올려치기를 해놓고 쉬는 경우가 다반사다.
미국 공장은 올려치기가 허용되지 않는다. 한국과 달리 여유 인력이 없다 보니 제 공정에서 차례대로 일을 해야 한다.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김영일 부장은 "미국인들의 경우 근무시간에 대한 개념이 명확하다. 라인이 멈추는 시간까지 일을 한 뒤에 퇴근을 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퇴근이나 점심식사 등 사적인 일보다는 근로가 우선이라는 의식이 명확하게 심어져 있다"고 전했다.
올려치기는 한꺼번에 공정을 하다 보니 불량 양산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미국 공장의 생산합격률도 국내 공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우수하다. 앨라배마 공장의 생산합격률은 91.6%. 그나마 신기준이 적용되면서 떨어진 수치로 도입 전인 2011년에는 96.6%를 기록했다.
◆신문, 휴대폰, 의자=한국 공장에서는 직원들이 생산라인에서 신문을 보거나 휴대폰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미국에는 이런 모습을 볼 수 없다. 당연히 서서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이런 요구도 하지 않는다. 한국처럼 휴게실 등에서 소파에 앉아 쉬는 근로자는 찾아볼 수 없다.
현대모비스 미시간 공장의 경우 쉬는 시간이 없다. 한국은 2시간 작업 후 10분을 휴식한다. 그러나 미시간 공장의 경우 쉬는 시간을 활용하기 위해 한 조를 추가로 투입, 돌아가면서 휴식을 취한다.
박진우 현대모비스 북미법인장은 "근로자들이 쉬는 시간에 라인 바로 옆 간이의자에서 휴식을 취한다"며 "쉬는 시간도 업무의 연장이라고 보고 개인적인 일을 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외국 공장에 근무하는 생산직 직원들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정작 울산공장 등의 생산라인을 보지 못하게 하는 우스꽝스러운 일도 지속되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지 근로자가 한국에 연수를 와도 생산라인은 못 보게 한다. 현지 근로자들이 한국의 근로형태를 보고 배우지 않을까 걱정돼서다"라며 "본사나 공장 등 주요 시설 규모만 보여준다"고 말했다.
◆정규직 요구=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은 매년 10여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업무숙련도, 근무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업무능력이 뛰어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비정규직의 경우 한국과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하지만 집단적으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경우는 없다. 비정규직은 정규직 대비 급여의 80%가량을 받는다.
천귀일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 법인장은 "미국 근로자의 경우 본인이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열심히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려고 하지, 정규직화를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앨라배마·디트로이트(미국)=김민영 기자 argu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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