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최대열 기자]문짝 2개에 뒷부분이 날렵하게 떨어지는 유려한 디자인의 차량을 통칭하는 쿠페는 완성차업체에게는 복잡미묘한 차종이다. 내부공간이나 연비와 같이 경제적 효율성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탓에 뭇 대중을 겨냥하긴 힘들다.
그러나 주행성능과 디자인, 카메이커의 가장 기본적인 역량을 오롯이 보여준다는 면에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종류이기도 하다. 지금은 흔적만 남은 대우차가 쿠페형 차량을 국내에 소개한 이후 스쿠프ㆍ티뷰론과 같은 초창기 모델, 최근 들어선 기존 차량의 파생 모델까지. 역사가 짧은 국내 자동차사(史)에서도 명맥이 끊이지 않는 건 쿠페가 일종의 해당 브랜드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가늠자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연간 신차 20만대 수준인 국내 준중형 차량시장을 기준으로 보면 해치백이나 쿠페와 같은 파생모델은 전체의 10% 남짓에 불과하다. 기아차가 개발 당시 특히 디자인에 공을 들인 포르테 쿱이 출시 이듬해 8000대 가까이 팔리며 '선방'했을 뿐 앞서 출시됐던 상당수 모델의 실적은 초라한 수준이었던 게 사실.
포르테 쿱 후속 모델로 최근 내놓은 K3 쿱의 연간 목표치를 전작에 비해 다소 적은 7000대 정도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기아차 관계자는 "일반 대중을 상대하는 완성차 회사들은 개발비용과 규모의 경제실현 여부, 판매가격 등과 같은 현실적인 제약 속에서 회사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종의 한계모델로 쿠페를 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출시된 쿠페의 역사를 보면 가장 앞쪽에는 80년대 말 대우차의 르망 레이서 GTE, 이후 현대차의 스쿠프 정도가 있다. 당시 서울올림픽을 전후로 국내 레저붐이 일면서 스포티한 차량에 대한 선호층이 막 늘어났던 데다 자동차수입 자유로 조치로 외산 스포츠카에 대비하기 위한 국산 차종개발이 시급한 상황이었다.
일본 업체와의 기술제휴로 탄생한 스쿠프는 이후 1995년까지 6만3294대가 팔리며 당시로서는 국내외 시장에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현대차에 따르면 스쿠프는 1990년 처음 미국에 출시돼 이듬해 3만3249대가 판매돼 현지법인 전체 실적 가운데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현대차는 이후 티뷰론, 투스카니에 이어 국내 첫 정통 스포츠 쿠페로 꼽는 제네시스 쿠페 등을 잇달아 내놨다. 제네시스 쿠페는 지난해 11월 부분변경 모델까지 출시하는 등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국산 쿠페 가운데 가장 윗등급에 있는 차종이다. 기아차는 2009년 포르테 쿱에 이어 최근 후속모델 K3 쿱을 선보이며 국내 쿠페 시장에서 확실한 주도권을 움켜지겠다는 목표다.
유럽 등 해외시장에선 일찌감치 쿠페형 차량의 시장이 형성돼 있다. 1930년대 쿠페형 차량을 처음 선보인 후 최근엔 6시리즈를 통해 쿠페형 라인업을 소개하고 있는 BMW는 올해 초 국내 시장에 고성능 차 M6 쿠페를 출시한데 이어 내달 뉴4시리즈 쿠페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뉴 4시리즈 쿠페는 3시리즈 쿠페보다 전폭과 휠이 더 길어지고 커진데 비해 차량 뒷쪽 쿠페형 라인이 더 낮아진 게 특징. BMW 전체 모델 가운데 무게중심이 가장 낮다고 회사는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역시 최근 열린 모터쇼에서 S클래스 쿠페 콘셉트카를 처음 공개하는 한편 국내에서 인기가 높은 뉴 E클래스에 쿠페형 모델을 추가해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선 상태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판매볼륨이 작아 상대적으로 대당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지만 높은 상품성과 일반 세단이 주지 못하는 차별화된 만족감을 제공하는 만큼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는 소비층이 있다"며 "최근 국내시장에 수입 쿠페가 늘어나고 있는 것도 같은 배경"이라고 말했다.
최대열 기자 dychoi@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