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만 5년…안전장치는 아직도 없다
[아시아경제 백우진 기자] "부실이 파급되는 연쇄반응으로부터 금융시장과 경제를 효과적으로 보호하지 못하기는 5년 전이나 마찬가지다."
독일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의 이사인 안드레아스 돔브레트는 이렇게 말하며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발생한 지 5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약속이 제시됐지만 실효성 있게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돔브레트 이사는 "의원들은 리먼 사태가 얼마나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을 훼손했는지 잊은 듯하다"고 일갈했다.
돔프레트는 리먼 사태 때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의 독일 책임자였다. 리먼 폭풍에서 살아남아 현재 분데스방크에서 금융안정을 담당한다. 직책의 성격상 금융업의 영역 확장에 가장 강경하게 반대하는 편이다. 여기엔 리먼과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거친 경험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독일 슈피겔은 최근 온라인판에서 돔브레트 이사와 시장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현재 주요국 금융부문의 안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동안 거론된 많은 규정과 규제가 조기에 법에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일에 대비한 자본 부족= 유럽 은행들은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게 됐다. 독일 코메르츠방크만 해도 부실채권이 1360억유로(1800억달러)에 이른다. 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 은행들은 앞으로 3~5년 동안 3조2000억유로 규모의 부실채권을 털어내야 한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많은 은행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돕지 않는다면 자본을 다시 확충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뮌헨 기술대학의 금융전문가인 크리스토프 카서러의 분석이다.
리먼이 파산보호를 신청했을 때 많은 대형은행의 자본준비금은 전체 자산의 2% 수준이었다. 그 결과 작은 손실이 파산으로 이어졌다. 이후 대형은행들은 자본준비금을 더 쌓았지만 비율은 현재 3%에 그친다. 제네바대학의 금융전문가 하랄드 하우는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금융당국은 논의할 때의 정치적인 언사와 달리 규정을 강화하는 데 반대한다"고 꼬집었다.
슈피겔은 금융당국은 위험한 대출에는 더 자본금을 쌓도록 한다고 하는데, 이건 얼핏 합리적인 것 같지만 위험은 드러난 이후에야 규모가 나오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이 부분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다. 미국 금융당국은 대형 은행이 위험가중자산 대비 기본자본비율을 국제기준인 바젤Ⅲ가 규정한 3%보다 높은 6%로 맞추도록 하기로 했다. 지난달 말 입법예고된 이 법안은 2018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기본자본비율은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지표다. 기본자본은 자본금과 자본준비금, 이익잉여금만 포함하고, 자기자본은 기본자본에 보완자본을 더해 산정한다.
◆은행 위험한 거래 차단벽은 아직= 은행의 파생상품 거래 투명성 제고, 고유계정과 고객계정의 분리 등도 이뤄지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위험한 은행 간 파생상품 거래를 감독 아래 놓인 거래소에서 이뤄지도록 함으로써 제어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장외 파생상품거래는 오히려 2009년 이후 20% 늘었다. 또 고객자산을 위험한 거래로부터 차단하는 별개 금융시스템을 고안했는데, 이 구상은 아직 설익은 단계다. 자본 확충에서 안전장치를 마련한 미국도 파생상품 규제에서는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7월 398개 법안으로 구성된 도드프랭크법을 마련했다. 로펌 데이비스 폴크에 따르면 이 가운데 약 40%인 158개만 시행됐다. 특히 도드프랭크법의 핵심 하위법인 볼커룰 제정은 두 차례나 연기됐다. 이 법은 은행이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에 자기자본의 3%까지만 투자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볼커룰 최종안이 마련된다고 해도 은행과 헤지펀드의 압력으로 왜곡돼, ‘헤징’의 정의가 투기를 포함하는 넓은 범위로 바뀔 수 있다. 최근 유럽의 금융전문지인 센트럴뱅킹저널은 이렇게 예상하고 "볼커룰을 온전한 내용으로 시행하지 못할 경우 파생상품으로 인해 위기가 증폭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로버트 라이히 전 미국 노동부장관은 최근 리먼 5주년을 맞아 "월스트리트의 탐욕이 빚은 재앙으로 인해 아직도 미국인 수백만명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구제금융을 받은 월스트리트는 여전히 경제를 자신의 사설 카지노 삼아 전보다 더 돈을 긁어모으고 있다"며 목청을 높였다. 라이히는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기고에서 "우리는 2008년 9월 이후 아무 것도 배운 게 없는가?"라며 개탄했다.
백우진 기자 cobalt100@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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