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파업금지법'을 만들어주십시오."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견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대토론회'장의 분위기가 일순 돌변했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 회장이 중견기업의 '신발 속 돌멩이'를 제거해 달라며 다소 황당하게까지 들리는 파업금지법을 건의했기 때문이다. 긴장감마저 엄습했다.
강 회장은 작정한 듯 가시 돋친 발언을 이어갔다. "직업을 세습하는 나라가 세계 어디에 있느냐. 대기업 노조가 신성불가침의 영역을 요구하고 있다. 대기업 노조의 파업은 '제조 살인'이다."
그의 이같은 비판은 일견 타당한 면이 있다. 현대ㆍ기아차 노조가 파업할 때마다 대리점과 협력사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들 노조는 '귀족 노조'라고 불리며 국민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된 지 오래다. 그 역시 현대ㆍ기아차에 매출 대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신영의 CEO로, 매년 파업철이 돌아올 때마다 고충이 적지 않았다.
올해 역시 이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임단협과 관련된 노조파업으로 이미 1조원이 넘는 생산차질 손실을 빚고 있다. 이 손실이 그대로 신영에 이어지는 상황인 만큼 이에 격분한 강 회장의 강경 발언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파업금지법을 내세우는 것은 지나친 '오버액션'으로 보인다. 그의 발언 직후 기자석에서는 "(수위가)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말들이 오갔다.
특히 중견련 회장이라는 그의 지위를 생각할 때 이날 발언은 적절치 않았다. 그는 신영 회장으로서가 아니라 전체 중견련 회원사를 대표해 이날 토론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이 발언을 할 때의 그는 중견련 회장이라기보다는 '신영 대표'로 보였다. 중견기업 CEO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개인적 의견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회장인 그가 말하는 순간 '공식적 의견'이 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예전부터 중소기업계 일각에서는 중견련이 사실상 대기업 이익 대변단체라는 말이 돌았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강 회장의 신영을 포함, 중견련 회원사 대부분은 대기업의 하청업체"라며 "결국 대기업의 이익을 우회적으로 대변하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강 회장의 '소신발언'이 이런 인식을 더욱 강하게 할까 우려된다. 경제단체 회장의 화법은 기업 CEO의 그것보다는 좀 더 다듬어져야 하지 않을까.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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