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미국의 7월 내구재 주문이 7.3% 감소하는 등 경기지표가 악화한 것은 미국 근로자들의 소득이 정체한 게 근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한 이후 4년째 경기회복이 지지부진하면서 신규 채용이 크게 늘지 않고 취업자들도 급여 인상보다는 일자리 유지를 택해 쓸 수 있는 돈이 과거처럼 크게 늘지 않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 노동부 통계를 인용해 미국의 비정부,비관리직 근로자의 물가 반영 시간당 임금은 이른바 ‘침체’가 공식종료된 2009년 6월 말 8.85달러에서 7월 말 8.77달러로 오히려 하락했다고 최근 보도했다.
또 경제매체 비즈니스인사이더(Business Insider)도 최근 빅맥지수에 포함된 22개 국가의 시간당 최저임금을 조사한 컨버지엑스그룹의 자료를 인용해2012년도 미국의 시간당 임금이 7.25달러로 조사대상국 중 7위이며, 호주(16.88달러)의 절반미만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WSJ에 따르면, 교육과 보건 서비스 부문 비관리직 근로자들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임금은 2009년 6월 이후 0.9% 올랐다. 레스토랑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경기침체가 끝난 이후 2.7% 감소했으며, 제조업 근로자들의 임금은 3.1% 떨어졌다.
임금정체나 감소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살 수 있는 능력 구매력을 줄이게 마련이다. 이에 따라 냉장고와 자동차 등 내구재에서부터 식당 음식비용까지 미국 국내총생산의 70%를 차지하는 민간소비를 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부의 효과는 남의 일일 뿐이다.
7월 미국의 내구재 주문량이 2266억 달러로 전달보다 7.3% 감소하고 7월 신규주택 판매가 39만4000채로 전달에 비해 13.4% 감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임금이 정체한 이유로 부진한 성장률, 기업의 급여체계 변경, 임금격차 축소 등 세 가지 요소를 꼽고 있다.
미국의 성장률은 지난 3분기 동안 평균 2% 미만으로 침체 전 평균 3.5%를 크게 밑돈다. 3분기 연속으로 계절 조정 연평균치가 2% 미만으로, 경기침체 전 평균치인 3.5%를 밑돌았다.
성장률이 낮으니 물가상승률도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경제가 건전하게 성장하는 수준으로 간주하는 2%에 근접했거나 그 이하였다.
노동력 수요가 낮고 물가 상승률이 낮은데다 1150만 명의 실업자가 있으니 기업들이 굳이 기존 직원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임금을 올려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또 기업들이 급여체계를 바꿔 임금을 거의 올려주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소속 경제연구원들이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6년 이후 찾아온 세 번의 경기침체기, 특히 2007~2009년 경기침체기에 기업들은 직원들의 임금삭감은 최소한으로 하는 대신 정리 해고를 단행해 남은 직원들을 만족시켰다. 기업들은 임금을 내리지 않지만 또 상한선을 두는 것을 택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임금 인상에 제동이 걸리도록 했다.
이런 식으로 미국 자동차 업계의 경우 인력이 부족하지만 채용을 늘리지 않고 있으며 신입직원은 기존 직원보다 50%나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미국 비영리 싱크탱크인 자동차연구소의 숀 맥카린던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아울러 세계화로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신흥국의 임금 수준이 미국에 근접해 미국의 임금인상은 곧바로 경쟁력 상실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한다고 WSJ은 분석했다.
경기가 나빠 쉽게 취업하기 힘든 만큼 근로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지도 못하고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퇴직하지도 못해 ‘절대 을’로 전락했다. 6월 말 기준으로 퇴직을 결정한 근로자는 1.6%로 침체 이전 2~2.2%를 크게 밑돌았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주택가격이 오르고 주가가 상승해 일부 미국인들이 낙관한다고 하더라도 다수 근로자들은 임금인상을 요구하지 못하고 소비지출과 경기회복을 위축시킨다고 WSJ은 지적했다.
향후 전망은 더 어둡다. 컨설팅회사인 HIS 글로벌 인사이트의 패트릭 뉴포트 이코노미스트는 2014년께 실질임금 상승률이 1%미만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WSJ은 임금상승을 위한 유일한 길은 경제가 더 좋아지거나 숙련 기술 수요가 증가하는 것 뿐이라고 결론지었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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