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성희 기자]국가정보원의 정치관여ㆍ선거개입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前) 국정원장에 대한 첫 공판에서 검찰과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이 팽팽히 맞섰다.
2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부장판사 이범균) 심리로 진행된 원 전 원장에 대한 공판에서 검찰은 모두진술을 통해 "원 전 원장은 정부와 여당을 비판하는 개인과 단체들에 무차별적으로 종북 딱지를 붙이는 등 신종 매카시즘의 행태를 보였다"면서 "그는 재임기간 4년 동안 지속적으로 정치관여를 지시했으며 드러난 정황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은 주요 국정현안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ㆍ여당을 지지ㆍ홍보하고 이를 반대하는 야당ㆍ시민단체를 종북좌파로 지목하는 동시에 공박하도록 했다"면서 "이는 국정원법상 불법 정치관여(국정원법 위반)에 해당하며 선거정국에선 공무원의 직위를 이용한 불법 선거운동(공직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지난해 2월 부서장 회의에서 "이제 총선도 있고 대선도 있는데 종북좌파들은 북과 연계해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정권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고 말했고, 지난해 총선 직후엔 "종북좌파 40여명이 여의도에 진출했는데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흔들 것이다. 전 직원이 혼연일체돼 준비해 주길 바란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에 대해 "원 전 원장의 종북관을 여실히 보여 주는 대목"이라며 "이는 그의 발언 일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종북좌파와 야당 성향 정치인의 주장이 외견상 비슷하거나 일치하다고 해서 사이버 활동을 정치관여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라며 "국정원의 존립근거를 지나치게 축소하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광우병 촛불사태 등을 통해 사이버 여론형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뒤 사이버팀을 총 4개로 구성, 70여명의 직원을 두는 등 사이버활동을 강화했다. 특히 검찰은 원 전 원장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활동을 강화했다고 꼬집었다.
검찰이 공개한 원 전 원장의 발언에 따르면 그는 2011년 전체 부서장 회의에서 "인터넷 자체를 종북좌파 세력들이 점령하다시피 했는데 우리가 이에 대한 대책을 제대로 안 세우고 있었다.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는 자세로 그런 세력을 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은 이에 대해서도 "사이버 활동은 국정원의 고유 업무"라며 "검찰이 기소한 것은 국정원의 근본 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맞섰다.
변호인은 또 "원 전 원장은 심리전단 직원들의 게시글, 댓글 내용 등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번 국회 국정조사 때 보고를 받고 처음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사건과 관련한 원 전 원장에 대한 다음 공판은 다음 달 2일 열리며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 단장의 증인신문이 예정돼 있다.
한편 원 전 원장의 개인 비리 혐의와 관련한 첫 공판은 다음 달 11일에 열릴 예정이며 이날은 핵심 증인인 황보연 전 황보건설 대표에 대한 증인신문이 진행된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사건과 별개로 황보연 전 황보건설 대표로부터 억대의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됐다.
양성희 기자 sunghe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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