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금융위기 예견한 최연소 IMF 수석이코노미스트 출신의 리버럴리스트
[아시아경제 박희준 기자]인도 정부가 내부 승진의 전통을 깨고 라구람 라잔 재무부 자문관을 중앙은행 총재로 지명했다. 과연 그는 인도의 구세주가 될 수 있을까?
9월4일 인도 중앙은행인 인도준비은행(RBI) 총재에 취임하는 라잔의 경력은 화려하다. 인도 출신인 그는 인도 델리공대에서 공부했지만 박사학위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땄다.
그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제통화기금(IMF) 의 최연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를 지냈다. 그는 이 기간을 제외하고는 25년 동안 줄곧 시카고 부스 경영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면서 후학을 키우고 글을 썼다. 그는 2005년 잭슨홀에서 열린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고별파티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킬 위험을 지적해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은 그를 ‘러다이트’라고 비난했지만 그의 명성은 올라갔다.
그는 또 인도 정부의 수석 경제고문을 맡고 있다. 금융부문 개혁 위원회 의장이기도 하다. 그는 금융위기의 원인과 정실인사와 부정부패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규제완화를 옹호하는 경제적 리버럴리스트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경력도 인도 경제가 당면한 난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인도는 경제성장 둔화, 고질인 인플레이션, 대규모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 그리고 이것이 가져온 루피 약세라는 다섯 가지 중병을 앓고 있다.
어느 것 하나 해결이 쉬운 문제는 아니다. 라잔의 급선무는 루피화 안정이다. 경제성장과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긴 하지만 루피화는 끝모르게 추락하면서 인도 경제에 치명상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루피는 지난 2년 동안 달러화에 대해 39% 평가절하됐다. 또 지난 5월22일 이후 두 달 여 동안에 13%나 가치가 하락했다. 루피는 6일 달러당 61.87까지 내려갔다가 61.5를 기록, 7월8일 작성된 사상 최저치 기록(달러당 61.2125루피)을 갈아치웠다.
이는 RBI의 시장개입과 2800억 달러를 조금 넘는 외환보유고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 때문에 인도 정부가 직접 루피를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과 외화표시 국채발행을 발표해야 루피가 안정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보험 등에 대한 외국인투자를 자유화하는 법안을 빨리 의회가 처리하는 등 개혁조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루피를 안정시키지 않으면 인도 경제는 겉잡을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물가가 치솟고 자본이 유출되는 등 치유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JP모건의 자한기르 아지즈 수석 인도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출혈을 막지 않으면 인도는 매우 심각한 결과에 직면할 것”이라면서 “이는 인도가 지금까지 빠진 최악의 경제적 수렁”이라고 진단했다.
인도 ICICI증권 A 프라사나 조사부문 대표는 1991년 상황을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1991년 인도는 외환위기로 경제개혁을 단행해야 했다.
라잔은 과연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라는 강풍속에서 중병에 걸린 인도를 구할 수 있을까? 아지즈 이코노미스트는 “그는 대단한 자본시장 명성을 갖고 있다”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FT는 라잔이 인도 경제 문제 해결 능력에 한계가 있음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FT에 라잔은 지난해 에세이에서 이렇게 적었다. “중앙은행장들은 오늘날 록스타와 같은 인기를 누린다.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 금융위기 중이나 이후에 어렵고 불확실한 경제여건에 대한 그들의 대응은 완전 무결하다. 그렇지만 언제 실탄이 다할 지를 인정할 수 있어야만 한다. 영웅에서 무(無)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이다”
박희준 기자 jacklon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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