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우리나라는 빈부 격차, 노동시장의 불안, 노령화 등으로 복지 이행이 더욱 절실해졌다. 실업, 사회 양극화, 인간 소외, 가족 해체 등 사회 위험 요인을 관리하는 복지 정책은 사회복지와 문화복지를 양 축으로 구현돼야 한다. 그러나 복지의 불균형으로 인해 정신적, 문화적 욕구 충족이 조화되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는 여전히 요원한 상태다. 특히 문화복지에 쓰여지는 돈은 버려지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문화 복지는 국민 행복과 고용 창출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유용한 정책이다. 문화복지가 이뤄지는 현장에서부터 정책 운영의 문제점, 해법을 살펴 본다.<편집자 주>
"다양한 문화 전달 모델 및 맞춤형 체험 개발 '절실'"
# "남편이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사망한 후 초등학교 2, 4학년 애들 영화 구경은 커녕 책 한권 사줄 수 없었다. 항상 비참하고 속상한 마음 뿐, 극장은 우리들에게 사치스런 장소인 것만 같았다. 처음으로 문화카드를 신청해 영화 보러 갈 때는 무척 설렜다. 아껴서 다음에 한번 더 보여주려고 애들만 들여 보내고 극장 밖에서 기다리는 것조차 즐거웠다." (서울 신도림동 정해숙 주부)
# "가족과 함께 영화 보고...딸의 생일날마저 아이들과 손 잡고 공연이나 영화를 관람하는 평범한 엄마의 일상은 꿈도 꾸지 못 했다. 남편 없이 지내온 10여년 동안 가난은 절망의 그림자가 돼 줄곧 나를 쫓아 다녔다. 가장으로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였다. 우리 가족에게 여가생활이 낭비라고 여기며 살았다. 그러다가 첫 '문화바우처'를 받던 날, 영화관으로 우리 가족의 첫 문화 나들이를 가게 됐다. 영화가 끝난 뒤 딸을 위해 소설책 한권도 샀다." (서울 상계동 고정해 주부)
문화 체험의 감동이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문화예술의 향유는 사람들을 창의적 삶으로 이끌어주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그런 측면에서 문화복지는 사회소외계층에게 더욱 절실하다.
2005년 4억원의 예산으로 첫 시범사업이 시작된 이후 계층간 문화 격차도 지속적으로 크게 해소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2년 문화향수 실태조사'에 따르면 전체 평균 문화 예술 관람 횟수와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의 문화 예술 관람 횟수는 각각 2008년 가구당 평균 4.88회ㆍ0.55회, 2010년 4.18회ㆍ0.89회, 2012년 4.86회ㆍ1.60회로 급격히 좁혀지는 추세다.
소외 계층 문화바우처 예산은 지난 2011년 901억원, 2012년 1181억원, 2013년 1184억원 등으로 늘었다. 그러나 문화복지정책이 전달 체계와 한정적 수혜 대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문화바우처 전달체계는 인터넷 접속에서 문화카드 형태로 읍면동사무소를 통한 방식을 병행하고 있다.
이에 전문가들은 읍면동 사무소의 복지 업무량을 감안할 때 현재의 방식으로 실질적인 전달이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또한 단순히 문화카드 제공만으로는 접근권이 제한된 사람에게 문화예술 향유를 전달하기가 쉽지 않다.
전국 119개 지자체에 영화관이 전무하고, 전국 서점 수도 1500여 개 이하로 줄어들면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사려고 대도시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이동해야 하는 등 번거로울 지경이다.
실례로 경기 광주시 곤지암읍에 사는 정명학군(17)은 편모 슬하에 기초수급자다. 정 군은 문화카드를 받고도 사용하길 주저한다. 특히 친구들에게 가난하다는게 들킬까봐 늘 염려스럽다. 영화를 보려면 혼자서 휴일에 CGV가 있는 성남 분당이나 서울 강변역까지 간다. 최소한 분당까지는 한 시간이 걸리고 차도 세번을 바꿔 탄다. 강변역 역시 한시간반이 소요돼 영화 한편 보기 위해 하루를 다 허비해야 한다.
정군은 "혼자 가기도 싫고, 친구랑 같이 갈 수도 없어" 항상 고민스럽다고 한다. 어느 날 혼자 영화 보고 햄버거 하나 사먹고 돌아올 때는 다시는 문화카드로 영화 보러 다니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다. 정 군은 "책 한두권 사가지고 그냥 온 적도 있다. 점심값, 차비 등으로 만원 이상 들어 앞으로 또 쓸 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지역에서조차 벌어지는 현상이다.
따라서 문화전달자들의 고민과 대상에 맞는 다양한 전달 기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여기서 부산지역에서 진행하는 '착한 그물'사업이 주는 희망 메시지는 주목할 만하다. 이 사업은 예술가들이 중증 장애인이나 초고령자 등 주거시설을 벗어나지 못 하는 사람들을 직접 찾아가 노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림을 함께 그려가는 프로그램이다.
경기문화재단의 '낮달문화소풍', '가가호호 문화교감' 사업도 성공적인 문화전달 방식으로 꼽힌다. 낮달문화소풍은 자발적 문화 향유가 어려운 계층을 대상으로 공연, 전시, 답사, 체험 등 문화예술 공간으로 직접 데려와 참여 기회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반면 '가가호호 문화교감' 사업은 외부 출입이 어려운 사람을 대상으로 직접 찾아가는 방식을 취한다. 이런 사업은 현장에서 만족도가 높고 감동적인 성과도 속속 전해져 문화복지사업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품과 비용이 많이 드는게 문제다. 때문에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공연장 등과 협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관람료를 절반 이상 할인해주고, 특별 공연시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사업의 특징은 문화단체, 예술가들의 재능 나눔, 문화매개 활동을 전개하는 자원봉사자, 문예활동가 등 시민들과 결합, 지역 내 선순환 구조의 문화 전달 및 재능 나눔 인프라 형성 등 긍정적인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나아가 지역문화 육성 및 예술가 지원, 문화 매개 인력 육성 등 문화복지 및 전달의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용호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여가과장은 "문화복지는 공공과 민간이 결합되고, 시민 참여가 이뤄지는 형태는 문화복지사업의 새로운 대안적 방식이 되고 있다"며 "각 지역과 대상자에 맞는 문화전달 모델을 다양하게 만들어낼 경우 문화복지는 문화나눔, 문화격차 해소는 물론 문화산업 기반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 복지 측면에서 정책 수혜대상자가 기초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등 경제적 소외계층으로 한정된 것도 바람직한 것인가하는 부분도 고민이 필요하다. 격오지 노령층 및 농어촌 주민은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문화접근성이 현격하게 떨어진다. 따라서 문화소외계층에만 주어지는 선택적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김세훈 상명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문화복지 전달체계는 보건 복지분야와 달리 서비스 전달에 일관성이 없는 상태라서 수혜가 일부에게만 제공된다"며 "중앙-광역-기초지자체로 이어지는 전달체계 구축 및 업무 소재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교수는 또 "문화복지는 문화바우처 뿐만 아니라 어르신 문화활동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갖추고도 일부만이 향유하고 있어 개선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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