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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동여담]일제청산과 태안 참사

시계아이콘01분 08초 소요

문화재청이 발간한 조선왕실의 소장 도서 목록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건 일제 식민통치가 남긴 적나라한 현실의 한 단면이었다. 600년 역사 왕실의 서고는 불과 350여종에 불과했다. 그건 서고라기보다는 서고의 '파편'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는데, 바로 한 나라의 문화재에 대한 일제의 철저한 약탈과 도륙의 결과에 다름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같은 파렴치한 약탈조차 일제가 우리의 정신과 의식에 남긴 것에 비한다면 지극히 경미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한 민족의 정신과 문화의 말살, 역사의 단절, 그리고 그 자리에 그들 자신의 문화의 가장 저급한 측면들을 이식한 것에 비하면 설령 이 땅의 모든 문화재를 빼앗겼더라도 그리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일제가 이 땅에 남긴 폐해 중에 가장 악성의 것으로 나는 '병영문화'를 꼽고 싶다. 그건 일본의 문무 겸비의 지식인 전통이었던 사무라이 정신의 껍데기이며 퇴행적 변종이었다. 상명하복과 획일주의, 이유를 불문한 구타, 폭언을 권위로 착각하는 무지, 우리 전래의 상무(尙武) 기풍과는 거리가 먼 천박한 군대문화가 조선 민족의 정신을 지배했다. 이것이 일제 식민통치로 인한 우리 민족의 더 큰 비극이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다른 데 있었다. 35년간의 식민지배가 끝나고 그 두 배 가까운 7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가 여전히 그 병영문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더 큰 비극이 있었다. 일본도와 군화를 숭상하는 무리들이 이 나라 정치와 사회를 지배하면서 국민들은 복창과 호각소리에 맞춰 잠을 깼고, 단색의 유니폼을 입어야 했으며, 열과 오를 맞춰 사고하고 행동해야 했다. 그건 전 국민의 사병화, 복종의 내면화, 사회의 단색화였다. 일제에 의한 조선의 병영화는 그들이 떠나고 난 뒤에 비로소 완성되었다.


태안의 해수욕장에서 벌어진 참사를 보면서 들었던 가장 큰 의문이 '왜 학생들에게 병영체험이 필요했을까'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학교 자체가 병영인데 도대체 왜 병영체험을 해야 했느냐는 것이었다. 소년들의 죽음은 일제하 황국의 신민을 만들 듯 학생들을 소년병으로 만들려 한 '일제 순사의 후예'들에 의한 희생이었다.


독도 문제가 터지면,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가 터지면 우리 사회는 일제히 반일의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그런 한편에서는 우리는 열심히 일제를 계승하며 확대하고 있다. 이게 무슨 블랙코미디인가. 참으로 희극이자 비극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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