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주고 약 준다'는 속담이 있는데 100% 맞는 말은 아니다. 지구상에 약 없는 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머리숱이 적어지는 증상 역시 특효약이 없는 대표적 난치병에 속한다. (글쎄, 이걸 병이라 불러도 되는 건지 정말 난감하지만…) 참고로 우리 집에선 무슨 일이 있어도 '대머리'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 어머니는 아들 셋을 볼 때마다 "머리숱이 너무 빡빡해도 보기 흉하다"면서 후렴으로 "얼굴 잘난 거지는 있어도 머리숱 적은 거지 없다"고 혼잣말을 하신다. 아이러니한 건 그런 어머니가 사위 볼 때는 머리숱에 유난히 집착하셨다는 사실이다.
내가 헤어스타일을 개선하기 위해 '약'에 손댄 건 40대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때가 돼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인생의 큰 고개를 넘느라 '잔머리'를 많이 쓴 탓인지 그나마 남아 있던 머리털이 뭉텅뭉텅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이대로 가다간 '소갈머리'와 '주변머리'가 동반 실종될 판이었다. 위기감이 엄습하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붙잡은 게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였다.
"아니, 머리 얘기하다 갑자기 웬 전립선이냐"고 하실 분이 있을 텐데, 여기엔 인류 문명사에 큰 획을 근 '위대한 우연'이 한몫했다. 때마침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개발에 성공한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에서 심각한(?) 부작용이 발견됐는데, 다름 아닌 머리털이 많아지는 것이었다.
약에서 부작용이 발견되면 대개의 회사 경영진은 큰 낭패라며 괴로워했을 텐데 그 제약회사는 그러지 않았다. 위기를 기회 삼아 이 약물의 분량을 조절해서 인류가 그토록 염원해 온 '대머리 치료제'를 생산, 판매하고 나선 것이다. 그럼 그 전립선비대증 치료제의 운명은 어찌 되었느냐고? 물론 지금도 잘 팔리고 있다. 같은 성분의 약을 포장만 달리해서 하나는 '머리'용으로 하나는 '전립선'용으로 파는 것인데 쉽게 말해 '희대의 양다리 걸치기'인 셈이다.
어찌됐든 내 입장에서는 긴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격이었다. 그러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전립선 약은 그런대로 지불할 정도의 가격대였으나 '머리 약'은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물론 제약회사 입장에선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전립선보다는 머리 쪽 시장이 훨씬 더 크니까 말이다. 고민 끝에 나는 일종의 꼼수를 쓰기로 했는데….
글=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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