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 확대하랬더니 '회의록' 줄이기'
"1년후 속기록 나온다"며 페이지 확 축소해 법취지 무시
[아시아경제 이승종 기자] 보건복지부가 국회의 입법 취지와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복지부 산하 국민연금의 정보 투명성을 위해 정보 공개 범위를 넓히라고 했는데 되레 축소하고 나선 것. 복지부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주 복지부가 공개한 '제2차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회의록'은 6페이지 분량이다. 이 중 위원들 간 오간 대화를 기록한 실질적인 대화록은 2페이지에 불과하다. 제1차 기금운용위 회의록(19페이지)에 비하면 분량이 10분의 1 가량으로 줄었다. 기금운용위는 현재 400조원을 웃도는 국민연금 기금 운용을 결정짓는 최고 심의기구로, 진영 복지부 장관, 최광 국민연금 이사장 등 당연직 위원 6명과 외부 위촉위원 14명으로 구성돼 있다. 기금운용위원 20명이 2시간 동안 토론한 내용이 2페이지로 '압축'된 것이다.
앞서 지난 2월 국회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 회의내용 공개를 확대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최근 규모가 급증한 기금 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에서다. 기금운용위 회의내용은 내용을 요약한 '회의록'과 모든 발언이 기록된 '속기록'으로 나뉜다. 복지부는 지난 2010년까지 회의록과 속기록을 모두 공개하다가 2011년부터 돌연 내부 규정을 바꿔 회의록만을 공개해 왔다.
개정안에 따르면 복지부는 회의록 공개는 그대로 유지하되 1년 후에는 속기록까지 공개해야 한다. 기존보다 공개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개정안이 적용된 건 이번 2차 기금운용위부터였다. 그런데 복지부가 뜬금없이 기존 회의록 공개 범위를 대폭 줄여버린 것이다.
기존 회의록은 위원명과 발언 내용이 명시돼 있어 위원들 간 오간 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회의록은 안건별 회의 내용을 한 두 문장으로 뭉뚱그려 놨다.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이언주 민주통합당 의원 측은 "정보 공개 확대라는 입법 취지를 도외시한 태도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위원별 발언 내용을 알 수 없으니 누가 전문성이 떨어지고 누가 적극적인지 등을 전혀 알 수가 없다. 아예 공개하지 않은 것만 못 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복지부의 회의록 공개 수준은 다른 정부 기관들과 비교해 봐도 미흡한 수준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매달 회의를 마친 뒤 20~30페이지에 달하는 의사록을 공개한다. 국내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만큼 발언에 책임을 지고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기금 규모가 국민연금의 10분의 1 수준인 사학연금도 매번 연금운영위원회를 마친 후 10~20페이지 분량의 회의록을 공개한다. 특히 최근에는 정보공개 범위 확대를 위한 설문조사도 실시했다. 사학연금 관계자는 "투명성 확보 차원에서 가입자의 요구에 맞춰 정보공개 범위를 넓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회의록 작성을 담당하는 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는 "기존 회의 공개 범위가 너무 넓었고, 어차피 1년 후 속기록을 공개하니 회의록을 더욱 요약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라며 "회의록은 기금운용위원들이 확인하고 결의한 것이니 문제없다고 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복지부와 국민연금이 커진 덩치에 걸맞은 책임 의식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400조원이 넘는 기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기금 규모 기준 세계 4대 연기금에 속한다. 막대한 돈줄을 쥐고 있어 국내외 금융투자 시장에선 슈퍼 '갑'으로 불린다. 그만큼 기금운용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되레 역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비밀주의를 질타한 바 있다. 당시 김현숙 새누리당 의원은 "기금운용본부는 외부 자산운용사 평가조작 비리가 드러나고도 외부 운용사 평가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이래서는 외부와 유착 의혹이 해소될 수 없고 국회에 의한 감시도 어렵다"고 비판했다.
이승종 기자 hanar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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