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뇌관,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어제 국회에서 열린 가계부채 청문회는 정부와 금융당국 수장들을 불러 가계부채 현황을 짚고, 대응책을 듣고, 해법을 논의했다. 단 하루의 청문회로 가계부채 문제의 정답을 찾을 수 없겠지만, '위기는 아니다'라는 정부의 긴장감 없는 시각과 새롭지 않은 대책은 서민들의 기대를 허물었다. 그나마 북방한계선(NLL) 논란 등으로 맞서며 민생을 외면했던 정치권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가계부채 문제를 다시 떠올려 심각성을 일깨우는 계기를 마련한 것은 의미 있다고 하겠다.
정부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961조원(지난 3월 말 기준)에 이르는 가계 빚 규모도 규모지만, 한층 심각한 것은 부채의 질이다. 주택담보 대출 중에서 일시상환 대출 비중이 비거치분할상환보다 높고 변동금리 대출이 고정금리보다 훨씬 많다. 전체의 72%는 원금은 놔둔 채 이자만 갚아 나간다. 빚이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다.
금리가 높은 비은행 대출 비중이 높은 것도 그늘이다. 은행 대출이 까다로워지면서 저신용자들이 제2금융권으로 이동해 풍선효과가 나타난 탓이다. 빚이 많은 계층은 빈곤층과 고령자, 자영업자다. 다중채무자만도 322만명에 이른다. 평균적으로 따져도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규모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보다 높다. 빚을 진 사람들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며 특히 저소득층, 은퇴 고령자 등 취약계층이 더 고통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가계부채의 규모, 증가 속도, 금융시스템으로 볼 때 위기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율은 둔화되는 추세가 맞다. 그렇지만 가계 형편이 나아져서 그런 것인가.
지금 당장 위기 상황이 아니라 해서 앞으로도 위기는 없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위기가 없다고 말할 때 위기는 찾아온다. 선진국은 돈 풀기를 중단할 태세고 금리는 올라가는 추세다. 금리가 상승하고 돈줄이 조여들 때 직격탄을 맞는 곳은 빚에 몰린 취약계층이다. 불황으로 일자리가 늘지 않는데 빚 갚을 여력이 생겨날 수 있는가. 정치권과 정부는 힘 모아 서민금융체계를 새롭게 정비하고 여러 경우의 비상 상황을 상정해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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