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 이광이 형이 페이스북에 사진 한 장을 올리고 이런 캡션을 달았다. '담벼락에 막걸리병은 왜 걸어 뒀을까?' 사진은 흑백이고 담백하다. 담벼락 오른쪽, 사진의 구석에 막걸리병 세 개가 있다. 목이 끈에 묶여 벽에 매달려 있다. 담 너머로 할머니 두 분의 뒷머리가 보인다.
사진을 본 사람들과 '사진작가' 이광이의 댓글이 오갔다. '담 안쪽에는 뭐가 걸려 있을까?' '담 안쪽에서는 마늘 까고 있는 듯….' '아침에 막걸리 배달원이 막걸리 통을 채우도록 그렇게 한 것 아닐까요?'
나도 답을 궁리해 봤다. 내 추측은 이렇다. 그 사진에는 할머니 두 분의 살림살이가 담겼다. 두 분은 햇볕을 아까워하고, 막걸리를 마시고 남은 빈 병을 아까워한다. 무슨 말인가? 해가 쨍쨍 내려 쪼이면 할머니들은 이불이며 빨래를 담벼락에 넌다. 물을 채워 한 쌍씩 묶은 막걸리병은 빨래집게 대용이다. 담벼락에 빨래를 널 때면, 대개 이불집게라고 불리는 입이 큰 빨래집게를 쓴다. 할머니들은 이불이며 빨래를 널고 나서 이불집게를 쓰는 대신 그 위에 막걸리병을 담장 양쪽으로 드리우는 게다.
아까워하는 것은 절약하는 것과는 다르다. 절약은 쓰지 않는 것이고, 아까워하는 것은 내버려 두지 않고, 버리지 않고 잘 쓰는 것이다.
왜 그런지 몰라도, 영어 문화권에는 '아깝다'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2002년에 노벨 화학상을 받은 일본 샐러리맨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는 수상 소감을 준비하며 '아깝다'를 옮길 적당한 영어 단어가 없다는 점을 알게 됐다. 다나카는 왜 '아깝다'는 말을 해야 했나. 그는 실수로 실험 재료를 망치게 됐는데, 버리기 아까워 그 재료로 실험을 하던 중 연구 성과를 내게 됐다. 다나카는 책 '일의 즐거움'에서 "아깝다는 말은 어렸을 적에 나를 많이 돌봐 준 할머니의 입버릇이었다"고 들려준다.
아깝다는 낱말은 잔잔한 울림을 준다. 자주 많이 사서 덜 쓴 채 버리는 이 소비의 시대, 아깝다는 말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아깝다는 말은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아까운 말이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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