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으로 뭘 먹지' 고민하고, 점심때가 되면 '점심으로 뭘 먹지' 망설이고, 저녁땐 또다시 '저녁은 뭘 하지' 고민하고…. 태어나 죽을 때까지 매일 하루 세 번씩 먹고 또 먹어 대도 때가 되면 스르르 배가 고파진다. 지긋지긋하기도 하고 허망하기도 한 반복이다. 그래서 "이거 혹 기계 아냐"하고 자조하게 된다. 도대체 먹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먹는 건지, 휘발유가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딱 멈춰 버리는 길거리의 자동차와 무엇이 다른가 말이다.
어서 빨리 알약 몇 개 입안에 털어 넣으면 일주일쯤 끼니 걱정 없이 버틸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도래했으면 하는 공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 절망하며 살아가던 중 불현듯 하나의 깨달음에 도달했다.
'먹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자칫 굶어 죽을 수 있으니까)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은 (생존에) 꼭 필요한 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것이다.(스스로 얼마나 대견하던지!)
그 이후 내 일상은 크게 개선됐다. 하루 세 끼는 예전처럼 그대로 유지하되 선택을 남에게 떠넘겨 그 지긋지긋하고 허망한 고민으로부터 해방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아침은 회사가 제공하는 김밥으로 해결하고(새벽부터 일하는 석간 신문사에서 일하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셈이다), 점심은 함께하는 이가 고민해서 잡은 식당에서 먹고, 저녁은 술자리가 있으면 가서 때우고 없으면 집에 가서 집사람이 차려 주는 밥상 앞에 앉는 식이다.
문제는 메뉴가 다양한 식당에 갔을 때 발생하는데 이때도 끝까지 고민을 남에게 밀어 버린다. "뭐 하실래요?"하고 물으면 "글쎄요, 이 식당은 뭘 잘하나, 그걸로 하지요" 또는 "드시고 싶은 걸로 주문하세요, 저는 아무거나 잘 먹습니다"하고 슬쩍 뒤로 빠지는 것이다.
혹 눈치 없이 끝까지 뭘 먹을 거냐고 추궁하는 이들이 종종 있는데 그때를 대비한 비장의 카드가 있으니, 심드렁하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무거나 먹지요, 뭐."
글=치우(恥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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