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경제민주화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경제민주화는 추진해야 되겠는데 기업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아 정부가 적극 밀어붙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지난 25일 현 부총리는 경제5단체장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현 부총리는 "경제민주화와 지하경제 양성화 관련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과정에서 기업을 세심하게 배려하겠다"고 밝혔다. 기업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자 기업과 대화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이 날 간담회에 현 부총리뿐만 아니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신제윤 금융위원장, 김덕중 국세청장, 백운찬 관세청장 등이 참석했다. 정부의 경제민주화 실무 부서 수장들이 모두 참석했다.
기업들은 최근 통상임금,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관계법 이슈는 물론 대리점업법을 비롯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제 등에 대해 강한 비판을 내놓고 있다. 얼마 전 화학사고에 대한 과징금과 처벌 규정을 담은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대해서도 기업을 고려하지 않은 졸속 개정이라고 비난했다.
대기업을 비롯한 경제5단체장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 과정이 너무 졸속으로 처리되고 이해관계자들의 공청회 등 토론 없이 진행되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경제를 살리고, 국회에서 추진되는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에도 대처해야 하는 현 부총리로서는 진퇴양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급기야 경제5단체장 간담회를 통해 달래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대기업들의 투자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판단했고 "기업이 경기회복에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경제민주화 이슈를 두고 지금 현오석 부총리의 심리상태는 이른바 '양가감정(ambivalence)'에 휩싸여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심리학에서 양가감정은 서로 상반되는 두 마음이 함께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두 개의 상반되는 마음의 크기가 비슷하면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듣거나 상황 여건에 따라 자신의 마음을 결정한다. 양가감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고 대범해 보이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결정이 미뤄져 리더로서는 큰 단점이라는 게 심리학적 분석이다.
현 부총리는 경제부총리로서 경제민주화법에 대해 국회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국회가 열리는 날이면 매주 며칠씩 국회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경제수장으로서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고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실물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경제단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함께 협력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 입법을 하고 있는 국회와 입법에 당장 아우성을 내지르는 경제5단체장 사이에 현 부총리는 서 있다. 국회에서는 국회의 말을 듣고, 경제5단체장과 만났을 때는 경제5단체장 말을 듣는다면 경제민주화 실마리는 풀리지 않는다.
줏대가 중요하다. 국회든 경제5단체장이든 경제부총리와 기획재정부 장관으로서 지금 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을 정확히 알고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경제민주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그리고 앞으로 무엇이 필요한지 기준을 정해놓아야 한다.
그 기준과 줏대는 물론 기획재정부에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런 원칙과 줏대를 가지고 국회와 경제5단체장을 상대로 임한다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양가감정'에서 벗어나는 길이 될 것이고 사태 해결의 실마리가 될 것이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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